2화
씨발. 어떤 새끼가 밀치는 바람에 발이 웅덩이에 빠져 버렸다. 물기가 신발 밑으로 스미고 들어와 발바닥이 축축해졌다. 걸을 때마다 미끄러워서 발가락을 곤두세우고 걸었는데, 걸을 때마다 신발에서 뽀득 소리가 났다. 이대로 독서실에 들어간다면 꼬랑내가 진동할 게 뻔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은 처음 만나러 가는데, 첫날부터 더러운 이미지를 풍기고 싶지는 않았다. 운이 좋다면 친구를 사귈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난 원래 대학교를 졸업하고서 홍두와 같이 공부를 했었다. 홍두는 내 대학교 친구인데, 얼굴이 빨갛고 동그래서 홍두라고 불렀다. 홍두도 같이 공무원 공부를 했었다. 그런데 홍두와는 연락 안 한 지가 좀 됐다. 다들 자기 공부하느라 바쁘니까. 어쩌면 종로 어딘가에서 독서실을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처음 그와 공부를 시작했었으니까. 물론 그가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양말을 사러 편의점에 들를까 하다가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무언가를 사야 하는 일 따위를 더럽게 귀찮아한다.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아서 무턱대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면 막상 뭘 사야 할지 도무지 고를 수가 없다. 막상 뭔가를 집고 계산을 하고 나오면 뭐가 필요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잘 사지를 않는다. 돈을 꺼내는 것도 귀찮고 말이다.
어쨌든 이번엔 친구를 좀 사귀어야 할 텐데. 그러질 못해서 쭉 혼자다.
이 바닥에선 누굴 사귀는 건, 사실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밥 하나를 먹을 때에도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질 정확하게 따져보고 밥을 먹어야 한다. 이 바닥에 들어오면 다들 알게 된다. 누구나 버거워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하루하루를 그냥 버티고 있을 뿐이다. 확실하게 내 미래는 이럴 거야, 하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초조해하며 자기랑 비슷한 인간을 찾아 무리를 이루고 싶어 한다. 같은 인간들끼리 모이면 그래도 나 혼자 망하는 건 아니네 하고 조금 덜 무서워지기 때문이다. 옆에 인간이 나보다 잘난 것 같으면 그게 사람을 갉아먹어 미치게 만든다. 그러니까 사람을 잘 따져봐야 한다.
만약, 고시 바닥 말고 다른 바닥의 인간을 만날 생각이라면 그런 건 접어둬야 한다. 다른 것들은 다른 것들의 사정을 모른다. 그런 인간들을 만나면 그때마다 내가 왜 힘든가에 대해 열 시간 반씩은 떠들어대야 한다. 온 힘을 다해 상대에게 왜 자신이 힘든지에 대해 이해시켰다고 생각하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래, 힘들겠구나’이다. 그래, 힘들겠구나, 라니. 지는 마치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그래, 오늘 조금 힘들었어.’라고 떠들어 댔다는 듯 뻔뻔하게 지껄이는 소리가 아닌가. 그리곤 설명하느라 맥이 빠진 사람 앞에서, 태연하게 직장 상사가 어떻다는 둥, 요즘 취업 시장이 어떻다는 둥, 졸업하니까 여자 만나기가 힘들다는 둥 개소리를 스무 시간씩 떠든다. 그런 개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차라리 지옥에라도 떨어지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상처받기 싫으면, 그냥 비슷한 부류의 인간을 만나는 게 낫다.
그런데 꼭 비슷한 처지의 인간을 만난다고 해서 서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바닥 인간들은 지나치게 예민한 멍청이들이다. 그런 인간들은 밥을 먹기 위해 모일 때부터가 문제다. 어떤 인간들은 상대가 뻔히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꼭 오 분씩 늦게 나오기 때문이다. 밥시간이 된 걸 알면서도 꼭 문제 하나를 붙들고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풀려고 안간힘을 쓴다.
처음엔 그냥 조금 늦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밥시간마다 그 인간과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가 된다. 그렇다고 너 왜 맨날 늦게 나오냐 뭐라 하기도 그렇고, 그럼 나도 늦게 가야지 하다가 젠장맞을 나중에는 약속시간이고 뭐고 난장판이 돼 버린다.
이렇게 치사한 짓거리는 메뉴를 정할 때까지도 이어진다. 고시생들은 먹는 걸 선택하는 데 엄청 민감하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메뉴를 선택하는 것 하나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김치찌개를 먹자고 했을 때 상대가 동의를 했어도, 이 인간이 정말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서 김치찌개를 먹자고 한 건지, 실은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서 내가 김치찌개 먹자고 하니까 김치찌개를 먹자고 한 건지를 밥 먹는 내내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들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뭐 하나 거절을 못 하고 결정을 못 내린다.
공부가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해서도 안 된다. 다들 비슷한 입장이긴 하지만, 자꾸만 우는 소리를 하면 힘이 빠져버려서 상대가 질려버리기 때문이다. 자기도 죽겠는데 맨날 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맨날 똑같은 책상에 앉아서 똑같은 것만 보고 있는데 밥 먹는 시간에 자꾸 반대편 놈이 하소연을 하면 결국 자기 처지를 생각하다가 같이 우울해 지기나 하는 것이다.
남들한테 하소연이나 하는 놈들은 남들 에너지를 뺏어서 자기 위로를 하는 개새끼들이다. 그런 인간들은 남 앞에선 실컷 신세 한탄만 하다가 분명 집에 가는 길에 핫도그나 하나 사 먹으면서 어린 여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낄낄거리며 여자 비위나 맞출 게 분명하다. 그런 인간들은 개새끼들이다.
자기는 꼭 합격할 거야, 라며 자신만만해하는 인간들도 조심해야 한다. 그 자식들은 대개 공부를 오래 한 장수생들이거나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짜 생들일 가능성이 높다.
장수생들은 초짜가 들어오면 일단 가르치려고 든다. 교재는 누구게 좋네, 강의는 누가 더 낫네. 놈들이 지껄이는 소리는 열에 하나만 맞는 소리다. 맞는 소리를 지껄여왔으면 진작에 이 바닥을 떴었어야지. 그런데도 놈들은 계속 지껄여댄다. 왜냐하면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진짜로 이 바닥을 영영 떠나지 못할까 봐 겁이 나는 거다. 그래서 놈들은 남이 자기를 존경해 주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아무한테나 아무렇지도 않게 뻥을 늘어놓는 거다. 불쌍한 새끼들.
초짜 놈들 생각에 지들은 이미 연금생활자이다. 놈들 눈에 자기보다 먼저 공부를 시작한 놈들은 죄다 실패자로만 보인다. 그러다가 초짜 놈들이 장수생 놈들이랑 붙어먹는 거다. 그러면 또 초짜 생이 장수생이 되는 거지. 뭐 그런 식이다.
웃긴 건, 여기 인간들은 죄다 남을 평가하는 데에만 이력이 나 있어서, 놈들 마빡엔 죄다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거다. 저놈은 독해서 잘만 하면 나갈 수도 있는 놈, 저놈은 불성실해서 맨날 술만 마시고 늦잠만 자는 놈. 맨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인간들만 보고 있으니 남들 평가하는 데는 다들 아주 도사다. 멍청한 건 남들 마빡엔 잘도 스티커를 붙이면서 자기 마빡에 붙은 스티커는 보지를 못한다는 거다. 그런 인간들이랑 어울려 있으니 차라리 금붕어 입에 키스라도 하고 물에 빠져 죽는 게 낫다. 그런 건 정말 질색이다.
딱 한 번 괜찮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마흔도 더 돼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덩치가 크고 늘 법전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었다. 아저씨는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봤었는데, 그러면서도 밥은 또 엄청 빠르게 삼켰다. 밥이랑 반찬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말이다.
꼭 밥을 다 먹고선, 정수기 옆에 서서 찬물을 한잔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식당 아줌마한테 농담을 했었다. "내일은 고기가 나오나요?" 같은 썰렁한 농담. 그러면 아줌마가 비위 좋게 깔깔대며 맞장구를 쳐주고, 아저씨도 그 앞에서 잠시 껄껄대며 웃다가, 갑자기 급정색을 하며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는 컵을 바구니에 넣고 좁은 복도를 따라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옆구리에 여전히 법전을 끼고서. 매식 식당 끝에 붙어있는 작은 고시원이었는데, 아저씨는 그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듯했다.
아저씨나 나나 늘 혼자였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인사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라는 걸 아니까.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이었을 거다. 아저씨가 밥을 먹다가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나는 그게 딸에게서 온 전화라는 걸 금방 알았다.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아저씨 표정을 보면 대충 그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화를 받는 내내 아저씨 입가에서 미소가 계속 떠나지를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열 잠자고 가요. 아빠도 보고 싶어요. 아빠도 사랑해요. 돌격 머리를 하고 삽질을 하듯 숟가락질을 하던 아저씨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까 보고 있는 나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응, 이제 엄마 바꿔줘요. 아저씨가 아이를 전화기에서 떼어 놓으려고 하는데 아이가 말을 잘 듣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우걱우걱 음식을 씹던 아저씨의 턱에서 최대한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아이를 전화기에서 떼어 놓으려고 애를 쓰는 듯, 아저씨는 각진 이마 골이 빨갛게 변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응, 이제 됐어요. 그만요. 아이들은 원래 그런 법이다.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떼도 쓰고 울기도 하는 법이다. 그런 게 아이들이다.
부인과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아저씨 표정이 금세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 응. 그래. 알겠어. 그래. 미안해. 아저씨 골이 더 빨개져서 아저씨가 땀을 더 삐질삐질 흘렸다. 땀을 닦으며 통화를 하면서도 아저씨는 계속 국그릇과 밥그릇으로 숟가락을 옮겼다.
통화 상대가 뭐라고 하는진 안 들어도 뻔히 보였다. 이번에는 잘 되는 거냐. 명절 때는 어떻게 할 거냐. 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서 이 고생이냐. 이제는 친정 식구들 눈치가 보인다. 뭐 그런 소리였을 테다.
하지만 남편이 여기 와서 어떻게 살고 있는 질 알았다면 아내가 그렇게 얘기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아저씨는 매일매일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를 하고, 아마도 하루 종일 저 좁달막한 방에서 밥 먹을 때 외에는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있을 거였단 말이다.
덩치 큰 아저씨의 표정이 부인과 통화를 끝내고는 완전히 가버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정말 딱 5초 만에 식판에 쌓아놓은 음식들을 죄다 입속에 꾹꾹 밀어 넣고는 옆구리에 법전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판을 비우러 걸어가면서도 아저씨는 우걱우걱 입속에 있는 음식을 맹렬하게 씹어 삼켰다.
그리곤 늘 그랬듯이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쪽으로 걸어왔다.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보고야 말았다. 빨간 눈.
나는 얼른 못 본 척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가 차가운 물을 단숨에 들이켜는데 정수기 아래서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보였다. 아저씨의 양말에 난 커다란 구멍 사이로 아저씨의 엄지와 검지 발가락이 살려달라는 듯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저씨는 다시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늘 하던 시답잖은 농담 같은 것도 하지 않은 채. 뚜벅뚜벅 좁은 복도의 빛을 모두 가리고서는. 구멍 난 양말이 잔뜩 개켜 있을 좁은 그 방으로.
아저씨가 뭐, 양말에 구멍 난 걸 들키거나 뭐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아내는 그를 좀 더 세심하게 챙겨줬어야 했다. 그랬으면 다 큰 어른이 밥 먹다가 우는 거나 들키고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다. 누군가의 그런 모습을 보는 건 보는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든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