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란 본디..."
스승이 말을 이었다.
"어여쁘고 약한 존재여서 어느 집에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네..."
스승의 말소리가 계속되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 그것을 나누려 하는 것은 의협이 아닐세."
스승이 천천히 사립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사립문 밖에선 들풀들이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들풀을 바라보았다. 해가 무림촌 전체에, 고르게 쏟아지고 있었다.
정사홍과 김사인이 무림촌에 다녀 간 후 무림촌 전체에 냉랭한 기운이 퍼졌다. 강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라 무림의 일엔 관심없던 사람들도 서로 편을 갈라 정사홍과 김사인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칼 들고 남의 걸 뺏는 놈 편역을 들어? 그러고도 니가 사람이여?"
"야 이놈아! 내가 은제 니 놈 집구석 고구마를 훔쳐먹었냐, 내 논 마지기에다가 니 놈 물을 대기를 했나? 어째 니는 말만 하면 시비여?"
조용하던 시골 주막에 사람이 모이면 싸움이 일었고 그 싸움의 끝은 으레 스승에 대한 험담으로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그러니께 그 검결 선생이 무림맹 팬을 들었어야제. 비 오는 날 그 무서운 냥반을 그냥 보냈으니 이자 우린 우찌되는겨?"
"그러게 말이시. 그 검결이라는 양반도 김사인인가 머시긴가 그 껌은 옷 입고 다니는 놈이랑 한 팬 아니여? 순 도적놈이었구먼..."
"그르치? 내까 그럴 줄 알았당께. 워째 지나가다 말을 걸어도 제집아처럼 얼굴만 벌게지고 말이여. 사램이 답답허니 속을 알 수가 없더라니께. 속아지가 시꺼맹께 그래 쌘님처럼 말도 못 했나 보구먼."
다른 한편에서는,
"아니. 대관절 이것이 말이 됩니까? 무림의 협, 사인 선생을 그리 보내다니요. 가진 자들의 마음은 모두 한결이라더니 검결 선생도 결국 그들과 다르지 않았군요. 검결 선생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참으시오. 주처사. 소속도 없이 무림촌에 흘러들어온 자가 감히 반상의 법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더니 이리될 줄 알았습니다."
그때,
이 무리들의 말을 말 없이 들으며 홀로 술을 마시던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 승광이었다.
"주모, 여기 독한 술을 항아리째 하나 주시오! 사방에 버러지들이 왱왱거려 술을 마실수가 없소. 내가 싹 다 씻어버려야겠소."
승광의 일갈에 좌중의 시선이 그가 앉은 평상으로 집중되었다.
"아니, 이 땡중 놈이 뭐라 했소? 무어? 버러지? 버러지?"
앞섭을 헤친 채 술을 마시던 술꾼 하나가 승광의 말을 듣고 분기하여 일어났다.
승광이 앉은 자세로 뒤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허. 버러지를 버러지라 하지, 그럼 장군님이라고 불러주리이까?"
"뭐? 이놈아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이 오살 헐 놈의 땡중이 지금 뭐라고 씨불이는겨?"
술꾼이 승광에게 달겨붙자 주위의 취꾼들이 그를 거들었다.
"거 버러지라니. 부처의 공덕을 닦는 자가 입을 어찌 함부로 놀리는 게요?"
승광이 취꾼들을 향해 벽력같이 소리쳤다.
"소승. 땡중을 땡중이라 부르시기에 기척 하였소. 부처를 부처라 부르면 부처가 기척 할 것이오. 허면 버러지를 불렀을 때 기척했던 이들은 누구들이요!"
엄중한 승광의 말에 주위의 소란이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승광이 말을 이었다.
"내 비록 이곳 태생은 아니나 검결 선생의 오랜 벗으로써, 무림촌의 동쪽에서 배를 곯는 이가 있다 하면 선생이 그들에게 양곡을 내어주었고, 무림촌의 서쪽에 있는 자가 송사에 휘말리면 검결 선생이 그에게 달려가 서를 써주었다 들었소. 무림촌의 장년들은 검결 선생에게 언문을 깨치고, 아녀자들은 선생에게 칼을 깨쳐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웠으니, 검결 선생이 무림촌에 해를 끼친 이가 있소이까!"
승광의 말을 들은 취객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아래를 향하였다. 그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조용히 주막을 빠져나갈 때 기침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승광은 잔에 있던 곡주를 모두 비운 후 주모에게 삯을 치르고 주막을 나왔다. 대낮부터 독주를 다섯동이나 마셨음에도 그의 어깨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걸음이 살구나무 밭을 지나 언덕 위의 오온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앞으로 현재시점(현대)은 장수 1인칭으로, 과거 시점(무림촌)은 3인칭으로 서술할 예정입니다.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