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장수에게 칼 잡는 법을 처음 알려준 이는 그의 사형 조평이었다.
*
장수가 명월을 업어다 준 그날 저녁, 사당나무 뒤 어둠 속에서 몇몇의 그림자가 장수의 주위를 에워쌌다.
뚱보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형님. 저 놈이에요. 저 놈이 나를 발로 차고 코를 으깨 버렸어요."
장수보다 키가 일곱 치 반은 크고 얼굴에 붉은 자국이 가득한 풋청년이 뚱보를 옆으로 밀며 앞으로 나왔다.
"너냐?"
앳된 얼굴의 청년이 짧게 물었다.
장수가 주춤하며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무를 하러 다니다 근처 고을의 무예반에서 본 적이 있던 얼굴이었다. 그는 허리춤에 나무 막대를 차고 있었다. 장수가 걸음을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저 녀석이 먼저 제 동무를 괴롭혔다구요. 그 아이는 혼자였구, 저 녀석들은 여럿이었는데 말예요."
"우린 그런 적 없어. 저 녀석이 거짓부렁을 하는 거예요! 우린 놀고 있었는데, 저 녀석이 난데없이 튀어나와 설랑 얘 코를 이렇게 만들어 놨어요!"
족제비가 빠르게 장수의 말을 받아쳤다. 뚱보의 코는 보기 흉하게 옆으로 비뚤어져 있었다.
퉷.
"형님, 그 말이 맞아요. 저 녀석이 먼저 우리를 때리고 제 코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가버렸어요!"
"너희들 저 얘의 말이 사실이냐?"
풋나기 청년이 뒤를 돌아 뚱보와 족제비에게 물었다. 그 둘을 노려보는 청년의 눈빛에 압도당해 뚱보와 족제비는 그의 앞에서 일언반구도 하지 못했다.
"... 아... 아니, 그건..."
쩍.
쩍.
연달아서 하얀 불빛이 족제비와 뚱보의 눈에서 번쩍였다. 붉은 얼굴의 발길질이 거침없이 그들의 안면과 복부에 퍼부어졌다. 장수는 놀라 그 광경을 지켜봤다.
"물러나 있어."
세찬 발길질이 끝나자 주위 조무래기들에게 붉은 얼굴이 말했다.
그리곤 뒤를 돌며 장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그 애의 대신이었다는 말이지?"
장수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랬어요! 내가 그 얘의 대신이었어요!"
장수가 외치자 붉은 얼굴이 장수 쪽으로 목검을 던지며 말했다.
"잡아."
검은 목단이 초승달에 빛을 받아 떨어진 낙엽 위에서 번들거렸다. 장수가 멈칫했다. 그가 여태껏 쥐어 본 무기라고는 나무를 깎아 만든 지겟대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그걸 사람을 향해 휘둘러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럴 엄두도, 그럴 필요도 지금껏 없었다.
"잡으라고."
붉은 얼굴이 말했다.
"내가 이 아이들의 대신이다." 그가 이어 말했다.
장수가 조용히 허리를 굽혀 목단을 쥐자, 무리들이 둘을 가운데 두고 조용히 한 걸음씩 물러났다.
목단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빡!
붉은 얼굴의 목단이 장수의 어깨를 내리쳤다.
윽.
장수가 칼을 떨구며 왼손으로 맞은 부위를 감쌌다.
빡!
쉴 틈을 주지 않고 붉은 얼굴이 장수를 뒤쪽으로 밀어붙였다. 장수의 손등과 머리, 이마, 어깨 위로 뼈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물밀 듯이 덮쳐왔다. 장수가 머리를 감싸고 붉은 얼굴의 몸통 쪽으로 몸을 날렸다.
뻑.
목단을 쥔 붉은 얼굴의 팔꿈치가 장수의 등에 무자비하게 내리 꽂혔다.
흑.
장수가 신음을 뱉으며 붉은 얼굴의 다리 아래로 주저앉았다. 붉은 얼굴이 장수의 안면을 발로 후려찼다. 장수가 또 한 번 신음을 흘리며 뒤로 크게 나자빠졌다. 붉은 얼굴이 천천히 걸어와 장수를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장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목검을 찾았다.
"일어나."
붉은 얼굴이 장수의 머리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자." 그가 장수의 흑단을 발로 툭 차 장수 쪽으로 밀었다. 장수는 흔들거리며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다가 그가 밀어 준 흑단을 다시 손에 쥐었다. 어지러웠다.
붕.
칼이 날아오다 장수의 머리 위에서 멈추어 섰다. 그의 칼 끝에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전율이 장수의 마디마디 곳곳으로 전해졌다. 등 뒤의 척추기둥, 오금과 허리 언저리, 배꼽 밑과 발가락 끝 마디까지, 몸의 구석구석이 저릿했다. 장수는 그대로 멈추어 서 있었다.
붉은 얼굴이 칼을 거두고 다가와 장수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애송이구나."
*
그날 밤, 장수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로 앓듯이 누웠다.
온몸이 욱신거렸고, 눈을 감아도 붉은 얼굴 청년의 검 끝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열이 내리지 않은 채 며칠을 흐느적거리며 지냈다.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장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다시 산에 나무를 하러 가던 어느 아침, 장수는 습관처럼 먼 길을 돌아 명월의 집 앞을 지나쳤다. 살구나무 마당 아래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조평의 모습이 보였다. 낮은 돌담 너머를 기웃거렸지만 명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장수가 낙담하고 빈 지게를 짊어진 채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너 또 왔느냐?"
장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조평이 웃고 있었다.
"아니요. 그냥 나무하러 가는 길이어요."
장수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네가 장수니?"
조평이 물었다.
"... 예..."
장수가 힘없이 조평의 얼굴을 보곤 대답했다.
장수가 무심히 발길을 산기슭 쪽으로 옮기려 할 때, 조평이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이리 와 보거라."
장수가 공손히 그의 앞에 가서 섰다.
"이 손등은 어디서 그랬느냐."
"어제 나무 하다가 그랬어요."
"나무하다 다친 상처가 아닌데."
"나무하다가 다친 거라니까요!"
장수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장수가 순순히 대답을 하지 않자, 조평이 포기한 듯 말했다.
"명월이 보러 왔느냐? 그 애를 불러줄까?"
자신의 손등에 맺힌 피멍이 장수의 눈에 들어왔다. 장수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냥 지나가던 길이어요."
장수가 조평의 어깨너머로 명월의 집 마당을 힐끗 바라봤다.
"이리 와 보거라." 조평이 다시 말했다.
"이리 와 보래도." 장수가 머뭇대자 조평이 다시 말하였다.
"그 지게도 벗어놓고."
장수가 지게를 나무 기둥에 기대고 조평의 앞에 다가가 섰다.
"자, 이 칼을 잡아 보렴."
장수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외쳤다.
"싫어요. 싫구만요."
"왜 싫으냐?"
"칼은 남을 죽일 때나 쓰는 거잖아요. 저는 남을 죽일 일이 없어요."
은빛 금속성을 띤 물건이 조평의 손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 칼은 역날검이다. 남을 해 할 일은 없어."
"역날검이어도 사람을 해치는 거는 다르지 않아요."
잠시 생각하더니, 조평이 칼을 검집에 꽂았다.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럼 그 지겟대를 가지고 와보렴."
조평이 세 자 반 정도 길이의 지겟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는 장수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네가 쥐고 다니듯이 그 막대기를 잡아 보겠느냐?"
장수가 척, 지겟대를 그의 손 위에 올렸다.
"오, 폼이 아주 좋구나. 이제 하늘을 찌르듯 그 막대기를 위로 올렸다 앞으로 내리쳐 보겠니?"
부웅. 긴 소리를 내며 칼이 앞으로 뻗었다.
"생각보다 폼이 아주 좋구나. 매일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하니?"
"예, 그렇구만요. 하루에 길 때는 여덟 시간도 하고, 짧은 때는 다섯 시간도 하는구만요."
"그렇게 매일 나무를 팬단 말이지?"
"예, 그렇구만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요."
"손 좀 내밀어 보겠느냐?"
장수가 쑥스러운 듯 그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조평이 장수의 손바닥을 구석구석 살피었다.
"좋은 손을 지녔구나. 근육과 마디 사이의 간격도 알맞게 되어 있어. 굳은살도 위치에 맞게 잘 잡혀있고."
"그게 무슨 말인가요?"
"네 손이 검을 잡기에 좋은 손이라는 뜻이란다. 도끼질을 할 때도 힘을 엉뚱하게 쓰지 않고 잘 옹그린다는 뜻이지."
"같은 시간을 일해도 제가 남들보다 나뭇짐을 세 배는 더 하는걸요."
장수가 신이 나서 말했다.
"너, 정식으로 검을 배워보지 않겠느냐?"
조평이 물었다.
"예? 검이요?"
"그렇다. 검"
명월의 집을 오가며 어른들이 칼질하는 것을 여럿 보긴 했지만, 장수 자신이 칼을 배운다는 것을 염두에 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제가 아까두 말씀드렸듯이, 저는 남을 해치고 싶지 않은걸요."
"좋다. 그렇다면, 그 막대기라도 좋아. 여기에 와서 배우는 것이 어렵다면, 나무를 하다 십 분씩이라도 그 막대기를 허공에 그어 보는 거다. 네가 방금 했던 것처럼."
"제가 아까 어떻게 했는데요?"
"벨 마음 없이 베었지."
"그게 무슨 소린가요. 아무튼, 허공에 막대기 질을 하는 것은 자신이 있습니다요. 매일 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런 것은 일도 아니지요."
"좋다. 그럼 이 시간대에 이곳에서 다시 보자꾸나."
"예."
장수가 지게를 지고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 어귀쯤을 지날 때, 뒤에서 칼을 아래로 내리는 조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먼 곳에서도 묵직한 칼날이 공간을 위에서 아래로 베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싱긋.
그날 하루 나무를 베며, 장수는 조평이 그에게 보였던 그 웃음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며, 그와 비슷한 모양의 웃음이 그의 입가에서 뻔질나게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