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후진사업부의 문을 제낀다.
햇살이 옥탑 난간에 부딪쳐 찬란하다.
"안녕하세요."
"빨리 문 닫아. 추워."
오팀장이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에취. 추워요 팀장님."
정미인이다.
정미인이 담요를 몸에 칭칭 말고 몸을 떨었다.
"우리 언제 옥탑 벗어나요. 손이 떨려서 일을 못하겠어요 팀장님."
정미인이 코를 훌쩍였다.
"미안해요 정차장. 누구 덕분에 옥탑 벗어나기는 영영 그른 것 같네요. 참 고맙습니다 이대리."
오팀장이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 그의 눈이 오소리처럼 째졌다.
"아니 장수씨. 사람이 아무리 눈치가 없다로서니 베란다고 진짜 인사부장님을 베면 어떡해?"
정미인이 힐난하듯 말했다.
"놔둬요 정차장. 장수대리 그런 게 뭐 한두번입니까. 에흐.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어야지. 시골 출신이라더니 상황 파악이 그리 안됩니까? 에흐 참."
오팀장이 혀를 찼다.
"주과장을 좀 보세요. 알아서 빠지 잖아요 알아서. 역시 엘리트들은 달라. 주과장 몸은 좀 괜찮아요?"
주과장이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예. 팀장님. 걱정해주신 덕에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주과장이 말했다.
내가 주과장을 보았다.
주과장이 나를 외면했다.
*
_ 쳐.
_ 쳐.
_ 쳐.
나는 나를 밀었다.
칼이 칼의 위를 탄다.
나와 나의 칼이.
크게. 날아간다.
"와!"
함성이 일제 터졌다.
인사부장의 수급이 날아갔다.
털썩.
피를 뿜으며 인사부장이 쓰러졌다.
"와!"
관중들이 소리쳤다.
털썩.
나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이게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나는 결국 인사부장을 헤치운 것이다.
그런데 승진 발령이 나지 않았다. 후진사업부 3팀도 여전히 난방이 되지 않는 옥탑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응원해주던 동료들도 시간이 지체되자, 내게 사내정치를 모른다,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치고 빠질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둥의 조언을 했고, 그나마 지급되던 기름 난로마저 끊기자 이젠 대놓고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오소리 팀장이 손을 바들바들 떨며 빈 머리를 넘길 때 나는 움츠러들었고, 정미인 차장이 엣취하며 코를 풀 때 내 심장은 덜컹거렸다.
사내정치.
나는 자기들이 만든 논리에 따라 열심히 싸운 것 뿐인데 결과가 이렇다니 할 말은 없었다.
아예 말을 말던가.
되려 주목을 받고 평판이 선 것은 주과장이었다.
역시 기획실 출신.
낄끼빠빠를 아는 엘리트.
사회생활 전문 고수.
주과장은 인사부장의 일격에 거짓으로 몸을 구른 것이었다.
윗사람이 치면 구르고 부르면 달려가고.
이것이 사회생활 필수템이었다니.
진작 이것을 가르치지 못한 내 스승을 탓할 일이었다.
"에치."
정차장이었다.
"이대리. 거 정차장 추워하는 거 안보여요? 얼른 가서 포트에 물이라도 좀 떠와요. 사람이 염치가 없어."
오팀장이 발끈하였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포트에 물을 받았다. 뜨거운 김이 올랐다.
"차장님 한잔 하시지요."
내가 믹스커피를 올렸다.
정차장이 혀를 대더니 말했다.
"어맛 장수씨. 나 카누 아님 안 먹는거 몰라? 정말 사람이 왤케 몰라."
정차장이 컵을 밀어냈다.
"죄송합니다 다시 타오겠습니다."
나는 비굴하게 컵을 챙겨 정수기 앞으로 향했다. 뒤통수에서 오 팀장 툴툴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봐요 주과장. 내가 뭐라 그랬어요. 칼만 휘두를 줄 알지 이건 뭐 돌아가는 판을 하나도 모른다니까. 부장님 수급을 덜컥 벴으니 이제 우린 어떡합니까. 라인도 없고 예산도 없고 에휴 내 팔자야."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할 뿐입니다 팀장님."
주과장이 말했다.
뽀득.
정미인의 텀블러가 손에서 헛돌았다.
_ 흑. 내가...
텀블러가 뿌옇게 젖었다.
_ 흑흑. 내가...
'걱정마. 당신은 소소나 신경써.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명월에게 당당하게 말하던 기억에 얼굴이 붉어졌다.
_ 흑흑. 내가...
순간 손등을 적시던 물방울들이 천천히 부유하며 주위를 멤돌았다.
_ 나는 설거지쟁이가 아니다.
쓰러져 있던 스승님.
불에 타던 무림촌.
_ 나는 설거지쟁이가 아니다.
쓸쓸하던 조평의 미소.
그를 보던 명월의 눈빛.
팟
부유하던 물방울들이 천천히 공전하더니 순간 증기로 화하였다.
_ 나는 설거지쟁이가 아니다. 나는 무림촌 12대 당주. 검결 오온 선생의 마지막 수계...
"그만해. 그만."
정미인이 등짝을 내리쳤다.
"커피 타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던가. 물 다 튀기고 난리네."
정미인이 말하였다.
나는 마른 걸레로 탕비실에 흐른 물을 훔쳐내었다.
오팀장이 말하였다.
"장수씨. 밖에 누가 와 있는데. 빨리 나가봐. 거 닦던 건 마저 닦고. 아 사람 참."
나는 걸레를 펴 말리고 엉덩이에 젖은 손을 닦으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검은 남자 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