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이럴수가. 내가 속은 건가.
비급으로 반로환동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와 회장 말고는 없었다. 그것을 박부장이 어찌?
"그럴리 없습니다! 회장님은 영웅을 모으고 있다 하셨다고요! 정파와 사파의 아가리에서 양민들을 구원하기 위해 비급이 필요하다 하셨다구요!"
"흥. 개 소나 구원하라지."
뻐엉!
폭렬음이 귀 뒤를 찢었다. 나는 까무룩 어둠에 쌓였다. 부장이 조소했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
_ 이이가 왜 이리 늦지...
명월이 잠든 소소의 이마를 쓸었다.
장수를 닮은 아이 소소.
명월이 소소의 얼굴을 쓸었다.
"자 그럼 그 선을 넘지 마세요."
꿈 속에서 술래잡기라도 하는 건가. 소소가 갑작 잠꼬대를 했다.
명월이 소소를 안았다. 장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
똑같은 일상.
똑같은 얼굴.
똑같은 책상.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게 아니었다.
머리. 하나.
머리. 둘.
머리. 셋.
수련하는 나를 보며 명월이 웃고 있다.
사형들이 사제들이 웃고 있다.
나는 사형 사제들과 함께 웃는다.
머리. 하나.
머리. 둘.
내가 살고 싶던 삶이란. 이게 아닌데.
*
"일어나."
부장이 말했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나."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시야가 돌아왔다.
나는 의자에 묶여 있었다.
"회장님이 지시하셨네. 당장 비급을 가져오라고."
내가 팔에 힘을 주었다. 매듭이 단단하여 포박이 끊어지지 않았다. 손목이 조였다.
"비급은 따로 없습니다. 저번에 드린 것이 다입니다. 회장님께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손목을 버둥거렸다. 몸이 조였다.
"그걸로 그분이 만족하실리가 없지. 초식을 대게. 회장님이 원하시는 초식을."
끈이 단단하였다. 손목이 패였다.
"회장님의 지시인가요?"
"그렇네."
"회장님은 제게 영웅들을 모으고 있다 말씀하시던데요?"
"그분은 누구에게나 그리 말씀하시지."
그렇군.
역시나.
그런 것이었구나.
"타이밍 좋을 때 그분이 원하는 것을 드렸어야지. 그래야 자네도. 회장님도 좋은 것 아니겠나. 늦지 않았네. 초식을 대게."
흥.
초식이라니.
비급이라니.
그런 것이 있다면.
내가 이러고 있을 이유도 없지.
"싫습니다."
빡.
부장이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턱이 돌았다.
퉷.
피가 돌았다.
피를 뱉었다.
"상황이 변했네. 자네를 회유할 여유가 없어. 회장님의 조급함이 한계를 넘었네. 어서 초식을 대게."
"싫습니다."
빡.
빡. 빡. 빡.
구타가 이어졌다.
피를 뱉었다.
"저를 베십시오."
내가 말했다.
빡.
피가 돌았다.
피를 뱉었다.
"초식을 대게."
"회장님이 초식에 집착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흥. 가진 자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나. 더 가지는 것이지."
빡.
피가 돌았다.
피를 뱉었다.
"그런 자들에게 초식을 넘겨줄 수 없습니다."
팟. 피를 뱉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겐가. 초식을 대게."
팟. 피를 뱉었다.
"무엇이 다른가. 여기 묶여 피를 뱉고 있는 자네나. 저기 위에서. 환동을 기다리는 회장이나. 무엇이 다른가."
팟. 피를 뱉었다.
"같지 않습니다."
"같지 않다?"
피를 뱉었다.
"무엇이?"
"나를 베십시오."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군."
부장이 뚜벅. 걸음을 디뎌 단에 올려진 긴 검을 들었다. 칼의 날이 고요했다.
"잘 가게."
칼의 날이
고요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내가 살고 싶던 삶으란. 이게 아닌데는 임창정님의 그때또다시에서 가져왔습니다. ㅋ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