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수를 포섭해. 여차하면 베어버리게."
"존명."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사내의 긴 눈에 떨림이 없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싱긋.
예의 서늘하던 그 웃음은 이제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없었다. 그는 장수의 사형.
조평이었다.
*
"사숙!"
"장수."
승광 사숙이 낮은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사숙."
목이 불덩이에 데인 듯 뜨거웠다. 뜨거운 것이 왈칵 흘러내렸다.
"사숙. 왜. 이제야. 왜 이제야 나타나신 겁니까."
너른 들판 같은 어깨. 부처님처럼 잘 생긴 귀와 구비. 늠름한 눈썹까지. 승광 사숙은 과거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장수. 몸이 많이 상하였구나. 그간 고생이 많았다."
"사숙. 스승님께서. 스승님께서."
승광이 이마를 짚었다.
"그래. 말하지 않아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승광의 눈에 결의가 빛났다.
"죄송합니다 사숙."
"너의 잘못이 아니다."
승광 사숙이 인자하게 말씀하셨다.
목이 메었다.
"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예까지 버텨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하느냐. 장하구나 장수야."
승광의 손이 따스했다.
"제가. 스승님을. 지켰어야 했는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오온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을 게다."
사숙이 말씀하셨다.
"명월은 잘 있느냐."
"예. 사숙. 다만. 스승님의 곁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다 기억을 잃어 무림에 대한 일은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숙."
승광이 말이 없었다.
"... 그래. 그리 되었구나."
승광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평이 형님과 양명 형님은 사파와 정파에 몸을 의탁하셨습니다. 평이 형님은 그 후로 소식을 모르며 양명 형님은 얼마전 우연히 뵈었습니다."
"명이? 명이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무림맹에 드셨다 지금은 외인이 되셨습니다."
"명이 녀석. 결국 그리 되었구나. 너희들을 지키지 못한 것은 나의 오가 크다."
사숙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씀 마십시요. 명이 형님도 사숙을 뵈면 기뻐하실 겁니다."
"그래. 명이도 평이도 각자 제 갈 길을 찾고 있구나. 오온도 그것을 알면 기뻐할 게야."
"사숙. 사숙께선 그간 어찌 지내셨는지요."
"세상을 유랑하며 이름들을 줍고 다녔지. 사린국에도 다녀오고. 자장투스트라의 본전에도 갔었단다. 정파와 사파. 그 이전의 무림을 찾기 위해 홍해, 화라, 천축, 대진까지 다녀왔단다. 무림을 벗어난 곳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갈등하더구나."
승광이 아스라히 말했다.
"인간은 결국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게지."
승광이 말을 댔다.
"홍해의 마른 바닥도, 대진국의 차가운 돌벽도 내게 답을 주진 못하더구나. 하지만 이제 너를 보니 알겠다."
승광이 말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지하는 자라는 것을."
승광이 말했다.
"장수. 네가 우리를 대표해야 한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자들의 이즘. 나는 그것을 민머리주의라 이른다."
승광의 벗은 머리에서 빛이 났다.
나는 눈이 부셔 그의 태를 감히 볼 수 없었다.
태초의 빛이 그의 머리 위에서 아롱지고 있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