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네와 같이 그저 행복을 바라는지 자네는 모르는가?"
그가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파든 정파든 그들이 말하는 정의나 의협이 아니야. 그들이 원하는 건 자신의 행복이라고. 그들은 아무도 지지하지 않아!"
그가 말했다.
"자네는 우리를 대표할 수 있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자들. 그들이 자네를 따를 걸세."
주과장이 말했다.
"기운을 차리게. 귀인을 모셔왔으니."
탕비실의 커튼이 걷히며 눈 부신 서광을 뒤로 하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맨들맨들한 민숭머리의 거구.
승광 사숙이었다.
*
정사홍과 김사인이 다녀가고 무림촌 전체엔 냉랭한 기운이 퍼졌었다. 강호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마을이라 무림 일엔 관심없던 사람들이 편을 갈라 서로를 헐뜯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칼 들고 남의 걸 뺏는 놈 편역을 들어? 그러고도 니가 사람이여?"
"야 이놈아! 내가 은제 니 놈 집구석 고구마를 훔쳐먹었냐, 논 마지기에다 니 놈 물을 대기를 했냐? 우째 니는 입만 열면 시비여?"
그들 싸움의 끝은 오온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 일수였고 그를 비판하는 건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나뉘지 않았다.
"그러니께 검결 선생이 무림맹 팬을 들었어야제. 비 오는 날 그 무서운 냥반을 그냥 보냈으니 우린 이자 우찌되는겨?"
"아니. 대관절 이것이 말이 됩니까? 무림의 협, 사인 선생을 그리 보내다니요. 가진 자들의 마음은 모두 한결이라더니 검결 선생도 그들과 다르지 않군요. 검결 선생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때 승광이 말하였다.
"주모, 여기 독한 술을 항아리째 주시오! 사방에 버러지들이 왱왱거려 술을 마실수가 없소. 내가 싹 다 씻어버려야겠소."
취꾼들이 그에 대꺼리하자 승광이 말하였다.
"소승. 땡중을 땡중이라 부르시기에 기척 하였소. 부처를 부처라 부르면 부처가 기척 할 것이오. 허면 버러지를 불렀을 때 기척했던 이들은 누구들이요!"
그가 이어 말하였다.
"내 비록 이곳 태생은 아니나 검결 선생의 오랜 벗으로써, 무림촌의 동쪽에서 배를 곯는 이가 있다 하면 선생이 그들에게 양곡을 내주었고, 무림촌의 서쪽에 있는 자가 송사에 휘말리면 검결 선생이 그에게 달려가 서를 써주었소. 무림촌의 장년들은 검결 선생에게 언문을 깨치고, 아녀자들은 선생에게 칼을 깨쳐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웠으니, 검결 선생이 무림촌에 해를 끼친 이가 있소이까!"
*
나회장이 죽고 정파와 사파는 각기 회의에 들었다.
"아니. 이토록 무림맹에 인재가 없단 말이오! 대륭이 지금 사파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는데 어찌 나서는 자가 없소!"
정사홍이 분개하며 상을 쳤다.
무림맹에게 대륭은 커다란 돈 줄이자 텃밭이었으나 최근 승승장구하는 사도연합과의 싸움에서 무림맹이 이길 길은 요원해보였다. 무림맹 이사들 역시 이를 알고 제 자리 보전하기에 급급하였다.
"이런. 고얀. 이런 측망할 데가!"
사오 분열한 무림맹 안에 선뜻 사파와 싸움에 승산있는 인재 또한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맹주. 너무 분개치 마시오. 내게 좋은 선안이 있소."
장로 하나가 맹주의 곁으로 다가가 그에게 속삭였다. 말을 들은 정사홍의 입꼬리가 슬몃 올랐다.
"허. 그런 묘안이 있었구려. 그런 묘안이 있구먼!"
말을 들은 정사홍이 흡족하다는 듯 상을 두드렸다.
*
"... 우리 쪽에 준비된 자는 누구인가."
사도련주 김사인이 물었다.
"녹림의 천살목과 하오문의 조기필이 있사옵니다."
"아니. 그들로는 부족하지. 무림맹이 어떤 술책을 가지고 나올지 우리로썬 알 길이 없네. 그들도 분명 방책을 마련할 것이야."
김사인이 뒤의 복면 사내에게 말했다.
"자네. 자네가 나가게."
"존명."
사내가 김사인의 앞으로 나섰다.
"이장수와 자네가 사제 지간이었다지?"
무릎 꿇은 사내의 얼굴이 비스듬히 김사인을 보았다.
"이장수를 포섭해. 여차하면 베어버리게."
"존명."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사내의 긴 눈에 떨림이 없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싱긋.
예의 서늘하던 그 웃음은 이제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없었다. 그는 장수의 사형.
조평이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