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개새끼들이 자기들 표받으려고 우리돈 다 갔다 쓰고 있네요?"
내 서늘한 문장에 오팀장의 코가 벌벌 떨었다. 젖어있는 개처럼 오팀장의 코가 차가웠다.
"이런 씨발 놈들."
"이런 씨바랄 놈들."
"이런 개 씨바랄 놈들!"
나는 분기탱천하였다.
기가.
역류하였다.
나는 입마에 빠졌다.
*
무림맹주가 찾아왔던 날. 스승은 반로환동을 푸셨었다.
차가운 비와 함께 정사홍이 돌아가고 나는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어찌 무림맹주 앞에서 반로환동을 감추셨습니까? 저들은 무림 최고의 세를 누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스승이 말씀하셨다.
"... 어찌 아이의 모습으로 저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겠는가. 저들에게 정의란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 말고는 없네."
스승이 이어 말씀하셨다.
"아이에게 정의란. 부모의 사랑일 뿐이야."
김사인이 찾아왔던 날. 스승은 아무 말없이 그를 돌려보냈다.
김사인이 돌아가고 나는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분은 강호에서 의협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분입니다. 어찌 그 분과 한마디 말씀도 나누지 않으셨습니까?"
스승이 말씀하셨다.
"...아이란 본디. 어여쁘고 약한 존재여서 어느 집에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네."
스승이 이어 말씀하셨다.
"남의 것을 빼앗아 그것을 나누려는 것은 협이 아닐세."
스승이 천천히 사립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사립문 밖에선 들풀들이 비를 맞고 있었다. 스승은 그 앞에 쪼그려 들풀에 비를 가려주었다.
*
헉.
"정신이 든 겐가?"
나는 사무실 바닥에 모로 누워있었다.
주과장이 맡에 앉아 있었다.
"과... 과장님..."
"아직 움직이지 마. 맥이 과하게 역류했어. 지금 움직여선 혈맥이 터질 뿐이야. 아직 움직이지 말게."
주과장이 바께스에 젖은 수건을 짰다.
주륵.
물이 흘렀다.
주과장이 젖은 수건을 이마 위에 올려주었다.
눈물이 흘렀다.
"이제 알았는가. 이 무림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눈물이 베갯잎을 적셨다.
"저... 저는."
"가만있게. 기복해선 안돼. 간신히 잡은 혈이 터져."
주과장이 말했다.
눈물이 났다.
"저... 저는. 그저. 행복하고 싶었을 뿐인데..."
주과장이 머리를 쓸었다.
"그래. 행복. 모두가 행복을 원하지."
"그것이 이리 험난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행복을 바란 것이 자네 잘못은 아니야. 자넬 탓하지 말게."
"이 씨발 놈들이. 윽."
옥혈이 칼 끝에 막힌 듯 명치가 심하게 쪼였다. 비수에 찔린 듯 저릿하였다.
"그만."
주과장이 나를 저지했다.
"그만 그대로."
주과장이 침을 놓았다.
침 위에서 향이 올랐다. 연기가 피어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알겠나. 내가 왜 그토록. 아무도 믿지 말라 당부했는지를."
주과장이 말했다.
소소가 습격당한 후 나를 업던 주과장. 기획실에서 좌천된 후 장부만 파뒤짚던 주과장. 나주임의 무례에 대응않던 주과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승진대회에서 자신을 공격하라고 일침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과. 과장님."
뜨거운 것이 옆을 흘렀다.
"그래. 이제 어찌 할 텐가."
주과장이 물었다.
"어.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사면초가. 나회장을 꺾었다 한들. 저를 지지하는 세력은 없습니다. 이미 대륭은 무림맹이나 사도연합과 결탁한 자들이 장악하고 있다고요."
"자네에겐 힘이 있지 않은가. 모두가 탐내는 오온의 비급이."
"그건 말 뿐입니다. 상대에게 기꺼이 머리를 내어주는 칼이라니. 그런 건 당초에 있지도 않았다구요. 회장을 쓰러뜨린 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저에게는 비급도. 세력도. 힘도 없어요. 저는 그저 이대리일 뿐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월급받고. 대출 빨리 갚고 싶고. 주식도 올랐음 하고. 애가 공부 잘해 저처럼 안살았음 하고. 회사 짤리면 어쩌나 걱정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일개 대리일 뿐이라구요. 그나마 승진도 못한!"
주과장이 말이 없었다.
그가 말없이 수건을 짰다.
수건에서 더운 물이 빠졌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군."
과장이 수건을 갈았다.
"이대리."
주과장이 말했다.
"주과장."
그가 말을 이었다.
"오팀장. 정미인. 김대리. 박대리. 성팀장. 장대리. 최과장. 신주임. 이주임. 천사원."
그가 말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네와 같이 그저 행복을 바라는지 자네는 모르는가?"
그가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파든 정파든 그들이 말하는 정의나 의협이 아니야. 그들이 원하는 건 자신의 행복이라고. 그들은 아무도 지지하지 않아!"
그가 말했다.
"자네는 우리를 대표할 수 있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자들. 그들이 자네를 따를 걸세."
주과장이 말했다.
"기운을 차리게. 귀인을 모셔왔으니."
탕비실의 커튼이 걷히며 눈 부신 서광을 뒤로 하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맨들맨들한 민숭머리의 거구.
승광 사숙이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