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며칠, 밤과 낮이 지났다. 절벽 아래 초원과 흙 인간들의 마을이 작은 깻잎과 콩알처럼 보였다.
식량은 떨어졌다. 마지막 남은 열매 하나를 쪼개어 먹었다.
이 산이 벌써 여섯 번째다. 지도는 이미 다섯 번째 산에서 끊겨 있었다.
어젯밤, DP의 지도를 펼쳤을 때 난, 아찔한 공포에 정신이 마뜩해졌다. 바이킹 산의 지도는 다섯 번째 산 이후의 지형은 담고 있지 않았다. DP가 싸준 커버를 벗겨봤지만, 지도의 끝은 너절하게 잘려있었다.
내가 도서관에서 지도를 도려낼 때 생각의 방의 위치가 나온 부분이 잘려나간 듯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왔던 방향과 지도에 나타난 산의 모양을 더듬어 바이킹 산을 빠져나갈 출구의 위치를 가늠했다. 이 절벽을 지나면 그 너머에 벗어날 길이 나올 터였다. 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바위에 몸을 기대었다.
후둑. 돌멩이가 아래로 굴렀다. 나는 몸을 더욱 절벽에 붙였다.
이곳엔 사람과 짐승은커녕, 풀 한 포기와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날카롭게 솟은 돌과 약간의 흙. 그리고 작게 보이는 땅 밑과 빈 하늘이 전부였다. 이곳엔 아무것도 살지 않았다. 들리는 거라곤 내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뿐.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걸음을 조금씩 내디뎠다.
“비켜!”
간신히 평지로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소리를 치며 맞은편에서 달려왔다. 앞에 눈이 시퍼런 남자가 나를 향해 빠르게 오고 있었다.
“당장 비켜!”
남자가 다시 외쳤다. 나는 급하게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가 나를 지나쳤다. 굳은 입술. 깊게 내린 모자. 잠시 스치는 동안 챙 밑의 그림자에서 그의 눈이 빛났다.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흥.”
남자가 나를 무시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내 앞을 스쳐 갔다. 그가 사라지는 쪽을 보다 용기를 내어 그를 불렀다. 듣지 못했는지 그는 점점 멀어졌다. 힘을 주어 더욱 크게 그를 불렀다.
“이봐요.”
그가 멈칫하더니 서서히 달음질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더니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캡으로 가린 얼굴에서 그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그가 각진 재킷의 허리춤에 손을 대고 내 앞에 섰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턱을 들고 나를 봤다.
“뭐지.”
“나는 기린입니다. 생각의 방을 찾다 길을 잃었어요.”
나는 그에게 이곳에 오게 된 경위와 찢긴 지도, 그리고 바닥나버린 식량에 대해 말했다. 그는 허리에 손을 붙인 채 가만히 내 말을 들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그가 물었다.
나는 그에게 남은 식량이 있으면 나눠 줄 것과 어떻게 하면 바이킹 산을 빠져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도움을 준다면 꺼지지 않는 담배를 찾고 돌아와 사례하겠다고도 말했다.
“뭐라고?”
그가 내게 말했다.
“사례를...”
“아니. 그전에.”
그가 말을 잘랐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가 붙여 말했다.
“뭘 찾고 있다고 했나.”
“꺼지지 않는 담배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꺼지지 않는 담배?”
나는 그에게 다시 그 담배를 찾아 이곳에 다다른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내 말을 듣는 동안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꺼지지 않는 담배라고?”
말이 끝나자 그가 다시 물었다. 나는 나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아 잠자코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뾰족한 턱과 짧은 머리털. 그는 나를 세워두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꺼지지 않는 담배라...”
그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난... 그,... 를 찾아왔어... 그 담배를 찾으려고, 이 산에 들어왔어...”
“당신도 그 담배를 찾고 있나요?”
내가 물었다. 그는 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계속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난 여기 있는 거지?”
그가 고개를 떨군 채 혼잣말을 계속했다.
“난, 뭔가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남자가 불안한 듯, 몸을 비척거렸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가 갑작스레 내게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나는 놀라 뒤로 물러서며 그에게 말했다.
“꺼지지 않는 담배를 찾던 중이라면서요. 나와 함께 갑시다.”
“뭐? 꺼지지 않는 담배?”
그가 되뇌던 말을 반복했다. 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게 뭔데?”
그가 다시 물었다. 나는 더욱 뒤로 물러나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자신의 팔꿈치를 훔치며 그가 뒤척거렸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나는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그는 내가 멀어지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먼 곳에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가 떨군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난 떠나야 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그가 모자를 눌러쓰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나는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난 자리엔 낡은 지도가 한 장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배낭에 접어 넣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저 남자와 같이 기억을 일ㅎ지 않으려면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잊지 말자. 나는 중간 나라의 기린. 꺼지지 않는 담배를 찾고 있다.
나는 배낭끈을 당기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