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처음 도착한 곳은 밥나무와 흙인간의 마을 로아이였다. DP가 준 지도에는 이곳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적혀있었다. 끝없는 이야기들의 도서관에서 찢어 왔던 지도인데, 담배 찾는 걸 포기하겠다며 DP에게 주었던 지도였다. 나는 DP가 싸준 커버와 함께 지도를 접어 가슴에 품었다.
로아이의 주민들은 외부와의 교류를 극히 꺼렸기 때문에 이곳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적었다. 다만 이곳 주민들은 밥 나무라고 하는 커다란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며, 그 나무를 중심으로 군락을 이루고 의식주를 해결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마을 어귀에 진입했을 때, 태양이 솟으며 들판의 어둠이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잎새 위의 이슬이 작아지고 자욱하던 안개가 점차 사그라졌다. 먼 들판 위로 태양이 반쯤 모습을 드러냈다. 수풀 위의 이슬을 떨구며 나는 마을로 들어섰다.
푸식.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흙 인간들이 땅에서 깨어났다. 태양 빛이 땅 위에 닿자 그곳에서 흙 인간들은 몸을 털며 일어났는데 대부분 내 허리 높이의 작은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몸을 흔들어 머리와 팔에 묻은 흙을 떼어냈다. 외부인인 나를 경계해 마을 밖으로 쫓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이들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깨어난 흙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무리를 이어 바쁘게 마을 중앙으로 달려갔다. 넘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동료를 부축하거나 흙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인간을 끄집어내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열심히 몸을 흔들며 같은 방향으로 뛰어갔다.
얼마간 그들의 뒤를 따라갔을 때 그들이 어디로 모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커다란 나무 아래로 모이고 있었는데, 그 나무의 기둥은 폭포수처럼 굵었고, 붉고 넓게 퍼진 가지는 새털처럼 많은 나뭇잎을 이고 마을 위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속으로 들어가자 볕을 쪼이며 느꼈던 따가움이 사라졌다. 나무 주위엔 많은 수의 흙 인간들이 재잘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 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를 골라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기린입니다. 중간 나라에서 왔죠.”
흙 인간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봤다.
“외지인이군. 꺼지지 않는 담배를 찾아온 건가?”
그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네, 어르신이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다녀간 모양이죠?”
“지나친 이는 많지만, 돌아온 이는 한 사람도 없다네. 아무도 그것을 찾지 못했어.”
“혹시 그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어르신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흙 인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네는 그걸 왜 찾는가?”
찾아서 사람들에게 그것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것의 존재 여부가 자네에게 도움을 주는가?”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그것을 찾아왔다고 그에게 답했다.
“오랜 시간 기다렸기 때문에 그것을 찾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네. 자넨 아직 이유를 모르고 있어.”
흙 인간이 말했다. 나는 그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직감을 가지고 그의 뒤를 계속 따랐다. 흙 인간들이 나무 둘레에 모여 계속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늘이 축제일인가요? 다들 즐거워 보이는군요.”
화제를 돌리기 위해 그에게 말했다.
“우리에겐 하루하루가 축제 날이지. 저건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야.”
흙 인간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기쁜 건가요? 날마다 이런 의식을 하나요?”
내가 물었다.
“저 나무가 우리의 밥 나무일세. 우리 부족은 선천적으로 피부가 약하게 태어나 밥 나무의 보호가 없이는 태양을 견딜 수가 없었지. 밥 나무가 우리 마을을 널리 지켜주는 덕에 우리는 밖으로 나올 수 있네. 저들은 하루가 시작된 것 자체가 기쁜 거야.”
“저 나무가 밥 나무인 모양이군요. 저도 책에서 저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우리의 에너지가 저 나무에게 전해져. 그것이 꼭 기쁨일 필욘 없어. 때론 슬픔도, 걱정도, 우울함도. 모든 에너지가 저기로 모여. 그리고 나무가 열매를 맺어 우리에게 주는 거지.”
흙 인간이 땅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내게 내밀었다. 이어서 그가 말했다.
“우리가 없었다면 저 나무도 죽었을 수 있어. 태양빛은 강하지만 나무에게도 에너지원이 필요하니. 우리는 열매를 먹고, 그 열매로 하루를 살고, 그 에너지로 저 나무는 열매를 맺지. 상당히 구체적인 관계야, 저 나무와 우리.”
땅에 떨어진 열매를 줍는 이도 있었고, 그완 상관없이 나무 아래서 노래를 부르는 이, 율동을 하는 이, 산책하는 이, 명상을 하는 이까지 흙 인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상적인 얘기군요.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이기도 해요. 하지만 저들은 저것 외에 다른 것은 바라지 못하나요? 이를테면 이곳을 벗어난다든가.”
“젊은이,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가?”
“저는 꺼지지 않는 담배를 찾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건 구체적이지 않아.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고 해서 자네가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야.”
“저는 그 담배를 찾아서 구체적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런 후엔 뭘 할 거지?”
나는 그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 후에 자넨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헤매겠지.”
그가 나를 대신해 답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찾는 일이 저에겐 중요합니다. 그것 외엔 제게 의미가 없어요. 제가 그것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죠.”
흙 인간이 눈을 감더니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것이 보이나?”
나는 눈을 감고 그것을 떠올려 보았다. 본 적이 없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상상해 왔기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있었다. 좀 더 자세히 그것을 그려보려는 순간, 머릿속에서 그것은 사라졌다.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내가 눈을 뜨며 말했다.
“바이킹 산을 넘어서, 생각의 방을 찾아가게. 그곳에 자네가 찾는 것이 있을 게야.”
흙 인간이 내게 말했다.
“저 열매들을 담아 가고. 산을 넘는데 그것이 꼭 필요할 테니.”
그가 이어 말했다. 나는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배낭을 열어 땅에 떨어진 열매들을 주워 담았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꼭 그 담배를 찾아 이곳에 들르겠습니다.”
흙 인간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을 찾고, 찾지 못하고는 자네의 문제이네. 마찬가지로 미래에 자네가 이곳에 있을지 없을지도 자네의 문제일세. 중요한 것은 자네가 누구인지를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야.”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꺼지지 않는 담배를 가지고요.”
보따리를 들춰 메고 산을 향해 가는데 그가 뒤에서 외쳤다.
“그대에게 우연이 함께 하기를.”
손을 흔들어 화답하고 그의 말을 곱씹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들판 위의 녹색 풀들이 점차 짧아지더니 이내 뾰족한 이파리만 가득한 초원이 나왔다. 그 초원의 끝에 거대한 회색 산이 있었다. 흙 인간이 말한 바이킹 산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되뇌었다.
우연이라.
나에게 우연 따윈 필요 없다. 설사, 내가 DP를 만나, 여행을 시작하고, 꺼지지 않는 담배를 찾아 바이킹 산을 향해 가는 게 우연의 연속이라 해도, 나는 나의 목적만을 생각할 일이다. 우연만을 바라기에는 내가 짊어진 것이 너무 크다. 나는 불확실한 것들을 제거하며 담배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고 확실하게 그것을 찾아 DP와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내가 믿고 있던 것의 실체를 그들 앞에 보일 것이다. 나는 배낭끈을 조였다.
날카로운 돌산이 눈앞에 솟아 있었다.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산, 바이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