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저는 하얀 갑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네모난 상자는 어둠이 채워져 빽빽하고 움직일 수 없었죠. 좁고 딱딱했지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정해진 자리에 발을 묻고 조용히 있는 게 내가 해야 할 전부였으니까요. 저는 만족했습니다.
딱 맞을 정도로 건조한 갑 속에서 저는 어둠이 따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을 감으면 아직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 들어있는 태아라고 저 자신이 느껴졌지요. 나를 지켜주는 갑 안에는 흙냄새와 나무 냄새, 종이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 내음을 폐로 깊숙이 들이마셨습니다.
조금 답답함을 느끼면 몸을 조금 돌려 바스락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곳이 좋았어요. 화려하고 트인 곳도 많았지만, 그곳은 좁고 평범했어요. 그래서 가장 좋았죠. 어떠한 일도, 어떠한 위험도 없는 곳. 그곳은 저를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기린이 내게 왔어요.
그때 제가, 기린을 만난 걸까요, 기린이 저를 만난 걸까요. 그날 처음 하늘을 보았는데, 그렇게 넓고 푸른 것은 처음이었어요. 기린이 저를 불러, 나오라고 팔을 잡았죠. 기린은 하얀 내 손을 좋아했어요. 기린은 내 손에 아낌없이 키스를 해줬죠.
기린이 떠나던 날. 나는 그를 따라갔어야 했을까요, 아님 그를 기다려야 했을까요.
저는 그날 이후 움직이는 DP가 되었어요. 한 곳을 바라보는 DP가 아닌, 여러 곳을 보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DP. 나는 이것도, 이 이전의 것도 좋았어요. 나는 이제 움직이는 DP에요. 다가갈 수 있는 동시에, 떠나갈 수 있는 DP. 기린에게서 나는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