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R의 집은 해안가 절벽 끝에 있다고 했다. 가끔 해변을 따라 산책을 나오는데, 외부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 놀랐다고도 했다. 나는 으레 그러하듯 내가 누구인지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험한 산과 사막을 건너며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그녀가 믿을 수 있게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자 그녀가 이내 경계를 풀었다.
그녀는 나에게 물과 음식을 주었다. 사막을 건너 이곳으로 온 사람은 처음 봤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마을로 함께 가자고도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정신없이 빵과 물을 집어 삼켰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음식을 모두 해치우자, 그녀는 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이 집에 가서 먹을 것을 더 가겨 오겠노라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나무 밑으로 기어가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녀가 바구니에 담겨있던 얇은 체크무늬 식탁보를 깔아주었다. 나는 그 위에 다시 누웠다.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옆에 없었다. 그녀가 깔아 준 식탁보에 누워 나를 스쳐가는 바람의 촉감을 느끼며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이내 그녀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짐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내게 커다란 유리병에 든 사과 주스, 연어와 오이, 감자 등을 다져서 버무린 통밀 샌드위치와 초콜릿 조각 케이크, 그리고 마른 크래커와 절인 소시지를 꺼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입에 욱여넣고 다시 고맙다고 인사했다.
마지막으로 차가운 사이다를 목으로 넘기자 몸이 다시 노곤해졌다.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치마의 아랫단을 손가락으로 말아 쥔 채 해안을 걷고 있었다. 파도가 그녀의 발아래를 간질이며 지나갔다. 나는 그녀가 걷는 모습을 넋이 나가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가왔다. 그녀가 곁에 앉았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꺼지지 않는 담배는 찾았나요?”
나는 찾을 수 없었다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럼 또 다시 그 담배를 찾아 떠날 건가요?”
R이 다시 물었다.
더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왜 그렇냐고 그녀가 물었다.
그것이 의미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왜 그것이 의미가 없게 되었냐고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것이 소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내가 말을 덧붙였다.
“내가 변한 것일 수도 있지요.”
그녀는 그럴 수도 있다면서 나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R이 바다를 보며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노래인데, 한 남자와 여자가 숲 속에서 만났다가 헤어졌다는 내용의 가사였다. 그녀는 그 노래를 끊임없이 흥얼 거렸고 나는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한 여자를 만났어, 아님 그녀가 나를 만났다고 해야 하나? 그녀가 나에게 그녀의 방을 보여주었지, 근사하지 않아? 노르웨이의 숲에서
그녀의 허밍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녀는 콧노래를 계속했고, 나도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어느덧 나는 내가 찾고 있던 존재에 대한 걸 잊어버리고, 내가 무엇을 찾아 이곳까지 왔나, 하는 것마저 잊어버리자, 그녀는 노래처럼 나를 떠나갔다. 그녀가 돌아간 후, 아무도 없는 해변에 홀로 앉아, 끊임없이 마주쳤다 헤어지는 파도를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것 같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나는 그 예감을 이기지 못해 바다로 한 발자국 걸음을 옮겼고, 어느새 차가워진 검은 물이 턱밑까지 차올라 찰랑댈 때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순간 나는, 저 물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고는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파도가 나를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길 기다렸다가, 그것이 나를 다시 물 위로 올렸을 때, 마침내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