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13화

by 빈자루

그날 이후 장수는 더 이상 지겟대로 땅을 짚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는 지겟대를 칼처럼 왼손 손가락에 걸고, 허리 옆에 차고 다녔다. 등과 가슴은 누가 하늘에서 그의 상투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꼿꼿하게 세우고 걸었으며 걸음걸이에도 힘을 빼었다.

그리고 아래로 늘어뜨린 지겟대의 무게를 왼편 손가락의 감각을 모두 동원하여 예민하게 느꼈다. 지겟대의 위는 언제든 오른손으로 빼들 수 있도록 하늘을 향하게 하여 지겟대의 무게 중심을 잡았다. 아래는 땅에 끌리지 않도록 하면서 그 끝이 장수의 종아리 뒤로 살짝 튀어나오도록 비스듬히 지겟대를 쥐었다. 그것은 쥔 것도 잡은 것도 아니었다. 장수의 손바닥과 다섯 손가락에 연결되어 팔의 세번째 관절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지겟대는 장수의 신체 중 일부와 같았다.


칼을 쥐면 쥘수록 약지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를 겨누고 서 있을 때, 자칫 조금만 방심을 하여도 팔의 상박과 하박, 바른손과 그 반대손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갔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약지의 역할이었다.

바른손으로는 칼자루의 윗부분을 감싸고 약지로 칼의 왼편을 오른쪽으로 슬쩍 당겼다. 역시, 반대손으로는 칼자루의 아랫부분을 감싸고 칼의 오른편을 왼쪽으로 살짝 당겼다. 이럴 때, 칼은 최소한의 힘으로 상대의 목을 노리고 있는 모양새를 유지하면서 언제든 장수의 손아귀에서 출격할 수 있도록 제3의 팔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엄지와 검지의 역할도 중요했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는 고리 모양을 이뤄, 칼을 쥐고 있다기보다는 그 고리에 칼을 꿰어 넣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형성된 고리는 칼이 허공에서 흩뿌려질 때, 그 칼의 끝에 맺힌 강기가 칼과 함께 땅 속으로 처박히지 않고 칼이 멈추게 하여 허공에 날리던 강기를 예기로 바꾸는 데에 사용되었다.

칼이 부드럽거나 무겁거나, 칼자루의 머릿 부분은 항상 바른손의 고리에 걸렸고 아랫부분은 반대손의 엄지 두덩 끝에 걸렸다. 그 덕에 칼자루의 반대편, 즉 상대를 베어야 하는 부분에는 대지 않아도 벨 수 있을 정도의 날카로운 예기가 형성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들고 있는 것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었다. 지겟대를 들면 지겟대의 무게를, 목단을 들면 목단의 무게를 느껴야 했다. 든 것의 무게를 느낀다는 것은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쥐고 있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할 경우에, 그것은 단순한 흉기에 지나지 않았다. 연필을 들면 연필의 목적에 맞게, 젓가락을 들면 젓가락의 목적에 맞게 그것이 사용되어야 했다. 그것은 손에 들린 것을 그것 자체의 존재로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이었다.



*

"너 요새 수상하다?"


빈 지게를 지고 명월의 집 담을 지나치고 있는 장수를 보고 명월이 말하였다. 가녀린 허리에 시원하게 뻗은 명월의 상체가 장수의 눈에 들어왔다.


"내가 무얼?"


"왜 요샌 우리 집 담을 지나치면서 안을 힐끗거리며 살펴보지 않아? 예전엔 그랬었잖아?"


또렷한 명월의 눈매와 단정한 미간이 장수의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뭐 도둑인가? 남의 집이나 훔쳐보게..."


"뭐? 니가 안 그랬었다는 말이야?"


명월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앙증맞던 두 눈이 금세 서운함을 드러내며 일렁거렸다.


"뭐, 니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니가 했던 말들이 사실이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니까."


명월이 금방 침착을 되찾고 조그만 입술을 종알거리며 장수에게 말했다. 명월이 말을 이었다.


"너 옆 고을에 얼굴 빨간 오라버니한테 당했다면서?"


장수가 놀라 물었다.


"뭐? 누가 그래? 누가 그런 말을 했어?"


"사실이구나. 어쩐지, 요새 걷는 폼도 달라지고 작대기 드는 폼도 달라졌다 했어. 평이 오라버니가 알려줬지. 내가 캐물었거든."


장수가 부끄러움에 낯을 붉혔다.


"내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그땐 검 잡는 법도 몰랐었단 말이야."


명월이 만족하다는 듯 장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에? 정남이와 세우가 나를 괴롭혀서?"


명월을 울렸던 뚱보의 이름은 정남, 족제비는 세우였다.


명월이 말했다.


"그깟 놈들 나 혼자서도 충분해.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한테 검술을 배워왔는 걸. 그땐 단지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던 것뿐이지."


잠시 그때를 떠올리는 듯 명월이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 다물었다.


"이리 와 봐."


명월이 장수를 불렀다.


장수가 붉은 얼굴에게서 받았던 상처는 이제 거의 아물어 가고 있었다.


"많이 다쳤던 모양이네... 아팠겠다..."


명월이 장수의 이마를 쓸며 말했다. 명월이 말을 이었다.


"정남이랑 세우야 그렇다 쳐도, 붉은 얼굴의 오라버니는 강해."


명월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평이 오라버니와 명이 오라버니를 제외하면 인근 고을에서 그 오라버니를 당할 수 있는 어른은 아마 없을걸."


이어 명월이 쾌활하게 말했다.


"물론, 우리 아버지와 나를 제외하고는 말이야."


장수가 물었다.


"뭐, 너도 제외하고 말이야?"


"그럼. 나 엄청 강해. 난 어릴 적부터 명이, 평이 오라버니와 함께 수련해 왔는 걸. 두 오라버니의 칼이 얼마나 강한데."


장수가 물끄러미 명월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 동네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명월이 지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담벼락을 타는 것도, 들판을 세게 달리는 것도 언제나 명월이 일등이었다. 하지만 고작 조그마한 여자 아이의 몸으로 붉은 얼굴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뭐야. 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명월이 새침한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좋아. 오늘은 내가 한 수 가르쳐주지. 네가 나를 위해 붉은 얼굴과 대신 맞서 줬으니 말이야."


명월이 빙글 웃으며 말했다.


"물론,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내가 초심자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러지 마. 나 장난할 시간 없어."


장수가 명월을 비켜 가려는데 명월의 목단 끝이 이미 장수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명월을 지나치려 해도 명월의 칼 끝은 자석처럼 장수의 목을 향했다.


"지나갈 수 있으면 지나가 봐. 지나갈 수, 있다면 말이야."


명월이 자신만만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장수가 천천히 지게를 내리고 지겟대를 양손에 거머쥐었다.


한 발. 한 발. 명월의 방어와 공격은 빈틈이 없었다. 다가가려 하면 물러섰고, 비켜가려 하면 막아섰다. 명월의 칼 끝은 늘상 장수의 목 언저리를 향하고 있어 도저히 그 칼을 걷어낼 재간이 없었다.


"왜 못하겠니?"


순간 명월의 칼이 장수의 칼을 타고 올라왔다. 아니, 명월의 몸이 장수의 칼을 타고 날아오는 듯 느껴졌다. 명월의 칼이 장수의 머리 위에서 멈춰 섰다.


"훗, 일 대 영이다. 너 이미 한 목숨 내게 주었어."


명월이 만족한다는 듯 장수에게 말을 뱉었다.


장수가 긴장하고 다시 칼 끝을 명월에게 겨누었다.


한 발. 한 발. 어느 순간 다시 명월의 칼 끝이 장수의 목젖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 대 영."


명월이 말했다.


장수의 몸이 굳어갔다. 더는 앞에 서 있는 명월이 보이지 않았다. 장수 자신이 들고 있는 칼 말고는 눈에 보이지가 않았다.


"삼 대 영."


장수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칼을 내질렀다.


"얏!"


명월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이미 명월의 칼이 자신의 목젖 앞에 멈추어져 있었다.


장수가 칼을 떨구고 고개를 수그렸다.


"뭐야. 벌써 끝난 거야? 난 또, 네가 엄청난 고수가 된 줄 알았지?"


명월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장수에게 다가왔다.


"이래서야, 네가 날 지켜줄 수가 있겠어? 내가 오히려 너를 지켜줘야 할 것 같은데?"


명월이 만족하다는 듯이 크게 웃으며 장수를 놀려댔다.


"그래도, 마지막은 그럭저럭 괜찮았어. 물론, 많이 아쉬웠지만."


이어 말했다.


"좀 더, 열심히 해봐. 나는 나보다 약한 남자는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야. 알겠지? 이장수?"


명월은 그렇게 이야기하곤 마당을 빠져나갔다.


장수는 명월이 빠져나간 자리를 한동안 멍하니 보다, 이내 방금 명월이 들어왔던 거리와 간격, 발의 움직임, 칼의 노림세, 순간적인 도약 등이 머릿속에 떠올라 그 순간을 한참 동안 복기하며 멍하니 서 있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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