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명월이 녀석이 너를 돕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하자 조평이 입을 떼었다.
"저를 돕고 싶었다니요?"
"자기를 대신해 붉은 얼굴과 맞서 주었으니, 그게 녀석 마음에 걸렸을 테지."
다시 장수의 뇌리에 붉은 얼굴의 칼이 스쳤다. 붕. 그것은 잊혀질 만하면 다시 장수의 귀에 울렸고, 장수의 귀에 울리면 장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그것은 장수를 일으켜 세웠다.
"한번 걸음을 디뎌 보겠느냐?"
"예?"
"걸음을 디뎌 보란 말이다. 나를 겨누고서."
장수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숨이 목 위에서, 그리고 명치 아래에서 쉬어지는 것을 느끼다가 단전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조평의 목젖을 향해 칼을 겨누곤, 그를 향해 크게 나아갔다.
"걸음이 너무 커."
조평이 바른손으로 칼등을 밀쳐내고 장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걸음이 너무 크면 나아가는 동안 상대에게 빈틈이 보이지."
조평이 말을 이었다.
"상대의 여기를 겨눴으면, 언제라도 상대를 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하는 거다."
조평이 장수의 칼 끝을 손으로 잡아 자신의 목을 겨누며 말했다.
"자, 다시 중단세를 취해보겠느냐."
장수가 중단을 취하자, 이번엔 조평이 칼등을 손으로 잡아 앞쪽으로 휙 잡아당겼다. 장수의 칼이 그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칼을 쥐고 있는 법은 좋구나."
조평이 다시 칼을 장수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너의 몸이 일자 인 것이 느껴지느냐?"
"예."
"너의 발은 땅을 누르고, 정수리는 하늘을 향해 솟아 있어야 한다. 땅은 너의 기를 갈무리해 주고, 하늘은 그 기를 돋구어 줄 것이야."
장수의 허리가 곧게 세워졌다.
"땅을 누르고 있되, 오금과 발목의 힘을 빼주도록 하거라. 네 칼이 네 몸의 일부이듯이, 네 몸이 땅의 일부인 것처럼 땅을 누른 힘을 빼거라."
이어 조평이 말했다.
"그리고 이렇듯 나아간다."
조평이 장수의 허리를 밀었다. 장수의 몸은 파도처럼 앞으로 쓸려나갔다. 그것은 공격받지 않기위해 상대에게 뛰어드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딱 장수가 나갈 수 있을 만큼의 거리였다. 그것은 개울물 한 폭의 거리와도 같았다.
"어떠냐? 알겠느냐?"
조평이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장수를 바라보았다.
"예... 사형..."
조평이 웃었다.
"이제 진심으로 해볼 마음이 생긴 게냐?"
"예?"
"방금 네가 나를 사형이라 부르지 않았느냐?"
"예? 제가 그리 불렀습니까? 조심하겠습니다, 사형."
장수가 조평에게 고개를 꾸뻑 조아렸다. 조평이 눈과 입가에 시원한 미소를 걸고 말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제."
그렇게 그들은 젊은 시절, 사형과 사제의 예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