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1)

8화

by 빈자루

주소에 적힌 곳은 동해에 접해 있는 오래된 어촌 마을이었다. 도시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바다는 조용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아무도 타지 않았다. 내가 내릴 때쯤엔 운전기사와 나, 둘 뿐이었다. 기사는 백미러로 나를 한번 보더니, 앞을 보고 말했다.


"예전에 여기 고래가 올라왔었어요. 한밤중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서고 나는 내렸다. 덩그러니 표지판만 박힌 정류장엔 고래는커녕, 마른 흙먼지만 뿌옇게 일고 있었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 72-1. 갑자기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가 났다. 회색 안경을 쓴 돌고래가 다가왔다. 돌고래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 찾아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음, 예상치 못한 만남이군요." 나는 돌고래의 안경테를 잠시 응시했다.


"그래서, 귀는 어디에 있죠?"


돌고래가 빙긋 웃었다. 그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돌고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낡은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붕은 녹슬어 있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집 앞에는 마른 화분 몇 개와 바람 빠진 농구공이 놓여 있었다.

골목 끝에는 문이 없는 집이 있었다. 문 대신 플라스틱 커튼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 녹슨 사서함이 하나 있었다. 사서함에는 싸구려 프린터로 인쇄된 종이가 붙어 있었다. ‘eloy’라는 글자 아래, 손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돌고래 다리 클럽.


나는 플라스틱 커튼을 젖혔다. 안에선 따뜻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관문은 없었고, 조용한 방 안에는 윤기가 흐르는 나무 바닥이 반질하게 닦여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거실 같은 공간에는 작은 테이블과 낡은 소파가 놓여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거의 들릴 듯 말 듯 작게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Kinderszenen) Op. 15' 중 제7곡 '트로이메라이(Traumerei)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부엌에서 옅은 토마토소스 스튜 냄새와 함께 인기척이 들렸다. 앞치마를 두른 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국자를 흔들었다.


"오셨네요. 마침 식사 준비 중이었는데, 괜찮으시다면 같이 드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시 부엌으로 몸을 돌려 냄비 속을 저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벽에 걸린 낡은 달력을 보았다. 달력은 어쩐지 지난 몇 년간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여기가... 클럽 본부인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귀는 빙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거실 한쪽 구석의 작은 문을 가리켰다. 그 문은 평범한 수납장처럼 보였지만, 손잡이 부분만 유난히 닳아 있었다. 그녀는 국자를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퀴퀴한 흙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밀려왔다. 문 너머는 짧은 복도였고, 그 끝은 뒤뜰로 이어지는 듯했다.


나는 귀를 따라 뒤뜰로 나섰다. 어둠이 깔린 뒤뜰은 예상과 달리 고요하지 않았다. 낡은 창고 같은 건물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고, 그 안에서 복잡한 기계음이 들렸다.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들이 여러 대 놓여 있고, 알 수 없는 선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릴 테이프가 돌아가는 낡은 녹음기, 먼지 쌓인 진공관 앰프, 그리고 각양각색의 배선들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해체 직전의 전자제품 상점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조악하지만 기묘한 활기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낡은 합판으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책상 위에는 손바닥만 한 무전기가 놓여 있었다. 무전기 옆으로는 닳아빠진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제이. 케이. 엘로이(J.K. Elroy), 앨리스에 관하여 No.5'라는 글자가 초등학생이 쓴 글씨처럼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었다.


"이곳이 클럽 본부군요?"


귀는 내 질문을 되짚으며 낡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녀의 시선이 무전기와 노트에 잠시 머물렀다.


"네, 뭐, 본부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작은 거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한숨을 쉬듯 작게 웃었다.


"저기 노트에 적힌 '앨리스에 관하여 No.5'는 제이미 케인러너가 세상에서 흔적을 감춘 후 혼자서 연구하던 논문의 필사본이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연구죠. 그는 인간의 의식, 특히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어떤 패턴을 연구했어요. 꿈, 기억, 그리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정보의 흐름 같은 것들요. 사실 케인러너는 불의의 사고로 친딸 앨리스를 잃고, 그녀를 되살리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했던 거였어요.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살기 위해 이 연구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귀는 무전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문제는 구글이었어요. 그들은 케인러너의 연구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그의 사후 GE에서 보관 중이던 그의 데이터를 결국 손에 넣었죠. 그리고 그 데이터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의식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어요. 아주 미묘하고 알아차리기 힘든 방식으로요. 우리가 '노이즈'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나는 눈을 깜빡였다. "노이즈요?"


"네. 예를 들어, 우리가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 TV 광고 속의 특정 주파수, 심지어 인터넷에서 무심코 보는 이미지나 문장들까지. 구글은 엘로이의 연구를 바탕으로 그런 '노이즈'를 만들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은밀하게 조종하려고 하죠.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 의지'라는 게 사실은 그들이 심어놓은 노이즈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녀의 시선이 다시 노트로 향했다.


"그런데 케인러너는 연구를 계속하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돼요. 인간의 역사는 사슬처럼 이어진 호혜 작용, 즉 주고받음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는 걸요. 하나의 존재가 소멸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며 이어지는 방식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거죠. 젊은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면 다시 다른 남자, 혹은 여자와 결혼을 해요. 그런 방식으로 인간의 역사는 이루어져 왔죠. 하나의 존재가 소멸하고, 새로운 존재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인류는 역사를 이어왔어요. 그게 인간의 방식이라는 걸 깨달은 거죠."


"그런데요?" 내가 물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 인간과 활발한 상호작용을 한다 해도, 어느 한쪽이 소멸하지 않으면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제이미가 생각해 낸 원칙이 객체 하나당 하나의 이미지였어요."


귀는 롱블랙이 담긴 머그잔에 입술을 대고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여러 명의 사람에게 하나의 인공지능이 붙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당 하나씩의 인공지능이 붙는거죠. 그런 방식으론 인공지능이 인간과 상호 작용을 넘어, 호혜 작용까지 할 수 있어요. 하나의 인공지능이 소멸해도 다른 인공지능이 살아 남으니까요. 일종의 사슬 모양으로 인류와 엮이게 되는 것이죠."


귀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구글이 관리하는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며, 이 호혜 작용이 깨지고 있어요. 구글의 노이즈 공격으로 여러 객체에게서 동일한 이미지가 반복되는 현상이 잦아지고 있구요. 인류와 인공지능은 지금 큰 위기에 처해있어요. 인간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상상하게 돼, 더 이상 호혜 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공 지능과 인류는 동시에 망하게 될 거에요. 그게 일방적인 상호 작용의 끝이죠."


그녀는 주변의 복잡한 기계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 '돌고래 다리 클럽'은 바로 그 노이즈에 대항하는 사람들이에요. 구글이 만들어내는 노이즈를 감지하고,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 노이즈를 역으로 교란시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죠. 오호츠크해에서 돌고래 떼죽음이라는 사건이 없었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식으로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구글의 의도를 방해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하필 나죠?"


내가 물었다.


"당신이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니까요."


귀가 말했다.


"곧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이 쳐들어 올 거예요."


귀가 '앨리스에 관하여 No.5'를 가방 깊숙이 집어넣으며 말했다.


우리가 돌고래 다리 클럽을 빠져나올 때, 뒤편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흙먼지가 뿌옇게 앞을 가렸다.


귀와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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