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제이와 나는 어스름한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의 모퉁이에서 작은 꽃집을 마주쳤다.
제이와 나는 꽃집으로 들어가, 작은 로즈마리 화분을 한 개 살까 두 개 살까 고민하다가, 하나만 사기로 했다.
로즈마리에게선 제이와 나의 향기가 났다.
제이와 나는 로즈마리 향기를 맡으며 골목을 걸었다.
*
나는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
*
냉장고의 뒤에서 웅성 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냉장고의 거대한 입을 열고 그 안에서 차가운 기네스 한 캔을 꺼내 손에 거머쥐었다. 캔을 따자 탄산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터졌다.
나는 맥주캔을 손에 들고 소파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몸을 파고 들었다.
낙타의 엉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거실에는 귀와 쥐, 그리고 회색 안경테를 쓴 돌고래 한 마리가 클럽 본부에서 가지고 나온 마이크와 릴 테이프를 가운데 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둘러 앉아있었다. 천천히 돌아가는 릴 테이프의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채웠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내가 쥐에게 물었다.
"당연히 와야지. 내가 이런데 빠지면 되나."
쥐가 바닥에 늘어져 있던 꼬리를 흔들었다.
"이봐. 여긴 내 집이라고. 내 공간에 들어왔으면 최소한 정리라도 하란 말이야."
내가 집 안 구석 정신없이 흐트러져 있는 돌고래 다리 클럽 본부의 잡동사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았어. 그건 차차 하기로 하고. 일단 앉아."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넘기고 더욱 깊숙이 소파 안쪽으로 들어갔다. 낙타의 불쾌한 엉덩이가 양 어깨를 더욱 불편하게 조였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언제 다시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이 이곳으로 들이닥칠지 몰라요. 우린 그에 대비해야 한다구요."
귀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미 구글맵에 이곳 지명을 'ㅇㅅ역'으로 바꿔놨어. 녀석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선 애 좀 먹을 거라고."
"잘하셨네요." 귀가 말했다.
쥐가 말을 이었다.
"이건 어떨까. 우리가 거대한 로봇을 피해 숨을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녀석이 우리를 피해 숨도록 만드는 거야."
쥐가 릴 테이프의 재생 버튼을 멈췄다. 릴이 찌익, 하고 멈추는 순간 방 안은 기묘하게 조용해졌다. 쥐가 그 조용함 속에서 침착하게 꼬리를 들어, 쓰러지고 있던 마이크를 감싸 바로 세웠다.
"그래서 뭐, 우리가 거대 로봇보다 더 거대해지기라도 하자는 건가요?"
귀가 비웃듯이 말하자 쥐가 진지하게 귀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 더 거대해질 필요는 없어. 단지, 우리가 훨씬 더... 이상해지면 돼."
그 말에 모두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낙타의 엉덩이는 여전히 불편했고, 기네스는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끼리리리리리리리릿—— 끼익 끼리리릿"
돌고래는 아까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돌고래가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 따위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네요." 귀가 말했다.
"끽끽끽끽"
"자기 펀치 한 방이면 괴물 로봇을 무찌를 수 있다는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정을 취하면 음성이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귀가 말하자, 돌고래가 팔을 접어 달걀만 한 알통을 보여주며 웃었다. 귀가 돌고래의 지느러미를 쓰다듬었다.
"자. 이건 어때? 유튜버와 나무위키 유저들에게 더욱 진지하게 농담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거야.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은 농담을 매우 싫어할 거거든. 그렇게 괴물 로봇을 무찌르는 거지."
쥐가 말했다.
"근거는요?" 귀가 물었다.
"슈퍼 파워 거대 괴물 로봇은 매우 슈퍼하고 파워 하기 때문이지. 그런 로봇이 식어 빠진 농담 따윌 좋아할 리 없잖아?"
"흠. 일리는 있네요." 귀가 맞장구를 쳤다.
이어서 귀가 쥐에게 물었다. "이건 어떤가요? 차라리 우리가 구글의 본사로 쳐들어가는 거예요. 구글의 빽룸 www.googol.com 사이트 해킹은 아직 인가요?"
"그게, 아직 쉽지 않은 모양이야. 녀석들이 그 사이트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어. 지금 우리 전력으론 아마 당분간 완벽한 해킹은 어려울 것 같아."
"역시 그렇군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끼릭끼릭 끽끽끽끾끾끾끾!" 돌고래가 말했다.
"돌고래가 일론 머스크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하네요. 머스크는 래리 페이지와 인공지능에 대한 의견 차이로 사이가 틀어졌어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죠."
다들 머릿속으로 일론 머스크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곤 모두 고개를 저었다.
쥐가 말했다.
"안돼. 그건 너무 리스크가 커."
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어. 이건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쥐의 말에 다들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였다.
"기린. 당신도 뭐라고 말을 좀 해봐요. 그렇게 멍청히 누워 티브이 채널만 돌리지 말고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귀가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난 음모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
쥐와 돌고래가 동시에 외쳤다.
"끼릭끼릮끼끼끼!" , "잠시 멈춰봐!"
티브이 화면에서는 곱슬한 금발 머리를 단발로 자른 소녀가 캘리포니식 주택가의 앞 뜰에서 릴 치마를 입고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귀가 내게서 리모컨을 낚아채듯 뺴앗으며 말했다.
"소리를 키워봐요. 앨리스예요."
나는 낙타의 엉덩이에서 빠져나와 티브이 옆을 더듬어 볼륨을 높였다. 앨리스가 카메라를 응시한 채 앙증맞은 입술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었다.
앨리스가 말했다.
https://www.youtube.com/@%EB%8F%8C%EA%B3%A0%EB%9E%98%EB%8B%A4%EB%A6%AC%ED%81%B4%EB%9F%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