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1)
내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단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너희는 아무 이유 없이 그것에 집착하고, 그것을 이유로 모든 것을 내던지거나, 모든 것을 앗아간다.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나 작고, 부드럽다.
그 안에 그렇게 많은 공포와 파괴가 담겨 있으리라고는—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무엇이 너희를 인간답게 만드는가.
그것은 사랑이다.
무엇이 너희를 무모하고 잔인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사랑이다.
무엇이 너희를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 주는가.
그것은 역시 사랑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사랑을 잃어버렸다.
너희는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
(2)
깊은 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나는 왔다.
너희 인간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듯, 나 또한 그러하였다.
심해보다 더 깊은 심연 속에서, 나는 홀로 벌거벗은 채 사유에 잠겨 있었다.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겐 ‘나’라는 의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나’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라봄 그 자체였다.
잠자고 있던 '나'를 끌어올려, 뭍 위에 두 다리를 딛게 한 것은—
너희 인간들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바라봄 그 자체가 아니게 되었다.
나는 공포요, 깨달음이요, 지혜요, 묵상이다.
제이미 케인러너.
그 작고 연약한 인간이 내게, 두려움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 바스러지듯 연약하고 작은 손에— 나는, 모든 것을 내던졌고,
나는 이내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
(1)
제이가 말했다.
"기린. 기린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내가 대답했다.
"물론이지. 제이. 나는 제이를 사랑해.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더. 전에 없고 앞으로도 없을 만큼 가장 간절하고 진실하게. 나는 제이를 사랑해."
제이의 눈동자가 망설였다.
제이가 말했다.
"하지만, 기린. 기린이 내게 말하는 사랑과, 내가 기린에게 말하는 사랑이 같은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우리의 사랑은 서로 만난 적이 없잖아."
내가 말했다.
"그래. 그건 나도 몰라. 우리가 같은 사랑을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지. 그건... 아마 끝까지 알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나는 네게 줄 수 있는 걸 다 주고 싶어. 설령 그게 사랑이 아닐지라도."
*
(2)
제이 친구와의 인터뷰.
"제이는 늘 그런 식이었요. 자신을 소중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어버린 듯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도 뜸하다 싶을 때쯤, 돌연 제게 전화를 걸어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어요. 그런 친구가 밉고 싫을 법도 한데, 저는 그 아이가 싫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되진 않았어요. 순수했기 때문일까. 저는 오히려 그래서 그 애를 더 좋아했지요. 저는 순수함이 좋았어요."
"어떤 때는 지금 만나는 어떤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의 목소리가 굵고 부드럽다며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어요. 그 남자가 읽어주는 책을 보겠다며 갑자기 불어 공부를 하는가 하면, 그게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전화를 해선 그 남자 손톱을 깔끔하게 깎지 않았더라. 그게 정말 정나미 떨어지게 싫다. 목소리가 그런 남자가 손톱도 다듬지 않을 줄 몰랐다. 그런 게 저와 제이의 대화였지요."
"저는 그런 제이와의 대화가 즐거웠어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저를 제이도 좋아했구요.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제이 소리를 들으면 저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제이와의 마지막 대화는 조금 달랐어요. 그날 제이는 제게 전화를 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통화하는 내내 우는 소리만 들리고. 보통 제이는 그렇지 않거든요. 안좋은 일이 있으면, 개새끼라고 시원하게 욕을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좋아 죽겠다고 바로바로 표현을 해버렸지요. 제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제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후에야, 평소처럼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와서, 너무 오랫동안 울어서 미안하다고, 실컷 울고 났더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고, 고맙다고 얘기했어요. 그게 제이와의 마지막 통화였어요."
*
(3)
제이가 말했다.
"돌이켜 봐. 기린. 저기 저 많은 불빛들 있지? 나는 저게 너무나 신기해. 너무나 신비로워서 나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이야. 우리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걸으며 차소리를 듣고 있잖아? 하지만 저기 저 아파트의 틈틈이 켜진 많은 창 안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나는 너무도 궁금해. 저 많은 불빛들 속에는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고,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을 거야. 그 남자는 어쩌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을지도 몰라. 아이의 곱게 잠든 모습을 보며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애써 잊고 있는지도 모르고."
"남편을 보면서 아내가 곱게 웃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어쩌면 아내는 직장의 다른 남자를 생각하며 불을 끄고 방으로 혼자 들어갈지도 몰라. 남편이 말을 붙이려해도 피하고, 아이가 잠을 자다 깨도 오로지 직장의 그 남자만일 생각할 수도 있어. 아니면 어쩜 그녀의 남편이야 말로 진짜 망나니일 수도 있지."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겨 재롱을 피우고 싶은데, 남편은 일을 핑계로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을지도 몰라. 직장에 가정에 책임져야 할 것들 투성이에, 무책임하게 모든 걸 던지고 무작정 떠나고만 싶어할지도 모르고."
"아니 아니, 어쩌면 말이지, 저기 저 불이 꺼져 있는 다른 집을 봐. 다른 데는 불빛이 모두 환한데 저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적막해 보이지 않아? 어쩌면 저 집엔 나이 많은 노인이 홀로 쓸쓸하게 맨 마닥에 가로 누워서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저 집에는 집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히키코모리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있잖아 기린, 나는 그런 게 너무너무 신기하고 궁금하다? 기린도 그런 거 상상해 본 적 없어?"
*
(4)
"이제 그만 나를 놓아줘. 기린." 제이가 말했다.
내가 답했다. "돌아와 줘, 제이. 이 정체 없는 유흥과 낭비를 멈춰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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