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라보자 Nov 26. 2019

이혼 과정을 등급으로 나눈다면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해있을까

‘나는 서류를 한번 훑어보고 날짜를 적고 서명했다. 내용에 대해 딱히 ‘의문점’은 없었다. 금전적 의무는 어느 쪽에도 발생하지 않고, 분할이 필요한 재산도 없고, 양육권을 다툴 아이도 없다. 지극히 단순하고 지극히 이해하기 쉬운 이혼이다. 초보자용 이혼절차라고 해도 될 것이다. 두 개의 인생이 하나로 포개졌다가 육 년 후 다시 갈라진다. 그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 기사단장 죽이기 ] 중에서 -



책을 읽던 중 재미있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초보자용 이혼절차’ . 이혼 과정에도 나름의 난이도가 있다고 표현한 작가의 생각이 신선해 그 말을 계속 곱씹어봤다. 이 책은 2017년에 샀지만, 책장에서 2년 동안 묵묵히 인테리어 소품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이제야 그 속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주인공은 36살의 이혼한 남자이다. 그는 결혼 후 적어도 처음 몇 년은 틀림없이 행복했다고 믿으며, 그들 부부 사이에 문제다운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형 여객선이 바다 한복판에서 키를 돌리는 것처럼 느릿한 전환이 일어났고, 여자의 일방적인 통보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공교롭게도 2019년의 나는 36살이 되어 책의 주인공과 나이가 같았고, 더욱이 이혼을 한 주인공의 배경에 내가 소설 속 인물이라도 된 듯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초보자용 이혼절차라니, 지금껏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아픔의 정도가 크든 작든, 사람은 누구나 다 남들의 아픔보다 자신의 고통을 더욱 크게 느끼고, 그렇기에 서로의 상처 정도를 비교할 수 없어서 이혼한 사람들을 만날 때 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만약 소설 속 표현대로 이혼의 과정을 등급화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어떠한 기준으로 할 수 있을까. 우선 난이도에 따라 초보자용, 중급자용, 상급자용으로 나눠야 하나. 이혼 중급 과정, 이혼 고급 과정이란 말이 언밸런스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렇다면 기준은? 아마도 난이도에 따라 분류해야겠지만, 그 난이도라는 것은 각자 체험 당시 상황과 입장이 다를 수 있고, 수치화, 객관화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수영을 배울 때와 같이 자유형, 배영은 초급, 평영은 중급, 접영은 상급과정 처럼 딱 단계가 구분이 되면 좋겠지만 이혼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러한 잣대를 만들어 놓지 않아서 내 나름의 기준을 정해봤다.


초보자용 이혼절차는 완전 분리가 가능한 경우라고 말하고 싶다. 책 속의 주인공 결혼생활을 두 개의 인생이 하나로 포개졌다가 다시 갈라진 것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한 가정을 이룬 부부가 전 배우자를 삶에 들어내고 다시 결혼 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완전 분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결혼과 이혼이라는 과정을 겪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없어서 연결고리가 없고, 서로의 수입은 각자 관리해서 재산분할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에, 이혼 후 원래 모르고 살았던 사람처럼 남으로 지낼 수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것 같다.


중급자용 이혼절차는 완전 분리는 불가능하지만 원만히 분리를 했을 때인 것 같다. 결혼 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을 수 있고, 공동으로 쌓아 올린 재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이혼을 하게 되면 양육권과 재산분할에 대해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리한 나이프로 반듯하게 자르는 치즈케이크처럼 공동의 재산을 나눌 수 없겠지만, 대화와 소통으로 분리에 성공했을 경우를 중급자용 이혼절차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분리는, 비록 상대방과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피도 흐르고 있는 자녀, 딱히 나의 노력으로만 이뤘다고 할 수 없는 재산, 매달 들어오거나 나가는 양육비 등 때문에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상급자용 이혼절차는 두 사람만의 의지로 분리가 불가능해서 소송이란 법률적 절차를 겪었을 때라고 분류해야 될 듯하다. 양육권을 결정하고, 재산분할을 함에 있어서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가 않는 것만으로 충분히 어려운 과정인데, 이 단계에서는 위자료라는 전에 두 단계에서 없던 새로운 고려사항이 등장할 수도 있다. 소송의 기간이 딱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부분 협의이혼보다는 오래 걸리기에 시간에 따른 고통과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무너지는 사람,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 책임을 더 지는 사람 등이 생길 수 있다. 납득할 수 없는 법원의 결정에 불복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과정의 난이도가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셋 중 어떠한 과정을 겪어도 이혼 후의 삶은 대부분- 멘탈이 강해서 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기에 - 막막할 것이다. 결혼이 처음이듯, 이혼도 처음이고, 아직 주변에는 이혼한 사람보다 결혼한 사람이 많기에, 그 삶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생활이 점점 자리 잡혀갔다. 추억으로 넘길 수 있는 결혼 생활이라도, 아픔으로 점철된 결혼생활이었을 지라도, 지금의 내가 힘들어서 그때를 그리워하거나, 가슴 아파하거나, 문제의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 이혼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어떠했든, 앞으로의 나는 그때보다 더 나아졌을 거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할 팔자는 따로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