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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Nov 23. 2019

이혼할 팔자는 따로 있을까

사주와 신점을 보고

엄마는 나를 용하다는 역술인으로 데려갔다. 나의 결혼 생활에 관하여 답답한 부분이 있어서 찾았는데, 질문하는 쪽은 거의 엄마였다. 그 때 난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여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기억이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단 한마디는 제대로 들었다.


“너는 물(水)의 기운을 타고났는데, 상대방은 나무(木)의 기운을 타고났어. 나무가 자라려면 뭐가 필요해? 물이 필요하잖아. 그래서 본인이 살라고 널 자꾸 빨아먹는 거야. ”


음양오행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처럼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은 배제하고, 이견이 없는 금전적인 면만 봤을 때 나는 많이 빨렸다. 구스다운의 가슴털을 제공하는 거위처럼 때가 되면 월급의 일부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뜯겨 나갔다.  


역술인의 그 말은 결혼 후 내 삶이 왜 그리 고단 했는지에 대한 의문의 해답이자, 동시에 결혼생활을 마무리 짓기까지 경각심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 이 사람과의 관계를 끝내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가슴털이 뽑히길 반복하는 거위처럼 살아야 한다고.


1년 뒤 아는 누나가 용하다는 점쟁이를 소개해줬다. 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무섭도록 정확하게 맞췄는데, 나도 한 번 가보라고 강력히 추천을 했다. 


앞길이 불투명했던 나는 누나의 남자 친구와 함께 신빨(?)의 기운을 느껴보기 위해 그 무속인을 찾았다. 남자 둘이 차 안에서 30분 정도 함께 기다리면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교대로 입장했다. 


이때의 나는 이혼 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어서 별로 물어본 것도 없었다. 그래서 2가지 질문만 기억난다.


“ 제가 이혼을 하게 될까요? ”


“ 할 수 있다. ”


“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


“ 내년 초에 할 수 있을 거고, 삼천만 원 정도는 줄 생각을 해야 한다. ”


왜 상대방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 의아했지만, 나름 기분 좋게 나왔던 것 같다.


바야흐로 이때는 2017년 여름이었고, 2019년 상반기에 고되고 길었던 소송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변호사 수수료 외 돈이 허투루 나가진 않았다.




나의 미래에 대해서 사주나 신점이 아직까지 적중한 것은 없지만, 과거의 특정 부분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맞췄다. 또, 이혼의 원인도 기가 막히게 분석했다. 그리고 이 원인은 대체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듯하다.


“ 30대 중반에 결혼했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했어. 그러니까 귀인을 못 만났지. ”


한 마디로 안 맞는 때에 결혼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들이 혼자 살 팔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 너는 혼자 살 팔자야. 마흔 중반이 넘어야 그 기가 빠져. 결혼하고 싶으면 그때 해야 해. 안 그러면 헤어져. ”


이혼할 팔자가 따로 있을까.


얼마 전 문무대왕릉에서 무속인들의 굿을 보면서 이런 의문점이 생겼다. 나에게 왜 이혼이란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서 스스로 던진 질문이었다. 


난 이혼이란 인생 최대의 시련을-군대, 졸업, 취직을 큰 어려움 없이 한 무난했던 삶이라-겪을 이유가 없다 생각했고, 대학생 때 했던 봉사활동, 취업한 이후로는 소액이지만 매월 하고 있는 기부 등의 선한 행동이 그 근거였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꾸준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것인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극단적인 비교이긴 하지만 흔히 말하는 껌 좀 씹고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은 잘못을 저질러 20대 초반에 교도소를 갔다 왔지만, 거기서 맺은 인연과 사업을 시작해 돈도 꽤 벌었고, 가정도 꾸려서 잘 살고 있다. 아마 고등학교 동창 중 제일 잘 나갈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만 놓고 보면-근시안적이긴 하지만-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좋은 일이 생긴다’ 혹은  ‘남에게 베풀어야 복 받는다’ 등의 도덕책에 실릴만한 행동을 장려하는 말들은 다 틀린 말이었다. 착하게 살았든, 상대적으로 덜 착하게 살았든 이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 30대 중반에 결혼을 했어야 잘 살았을 텐데, 너무 빨리 결혼을 해서 이혼을 했어. ”


나의 생년월일을 보고 역술인, 무속인이 하나같이 한 말이다. 아마도 명리학에 근거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주는 통계이다. 같은 순간에 태어난 인생들의 공통점을 찾아 평균을 낸 것이다. 커다란 맥락에서 보면 각자에겐 결혼에 적합한 때가 있을 것이고, 그 시기에 만나고 있는 혹은 나타날 사람이 인생의 배필감일 것이다. 결국 좋은 때에 좋은 사람을 만나면 백년해로하는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초전박살 나는 것이다.


이혼할 팔자는 따로 없다. 나 자신이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결혼을 결심했거나, 결혼할 배우자를 고른 자신의 선택이 틀렸기에 이혼한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행동한다. 그러한 선택의 결과가 정답인지 아닌지는 바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 뒤 돌아봤을 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선택이 정답이기를, 일이 잘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지난 인생을 잘 살았든, 못 살았든 그 순간의 선택만 틀린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혼할 팔자인가 봐 하며 일생을 원망하거나 운명을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단순히 내가 내린 결정 하나가 틀린 것이고, 틀린 답은 맞게 고치면 된다. 


그래서 이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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