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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Mar 31. 2021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여명(餘命)에 대하여


여명(餘命): 얼마 남지 아니한 쇠잔한 목숨.

저녁 무렵 의사가 병원 복도 중간쯤 있는 컴퓨터 앞으로 우리를 불러 엄마의 몸속을 흑백으로 찍은 사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엄마의 죽음이 가까이에 왔다는 소식을 남편과 딸에게 최대한 이성적인 태도와 전문적인 설명으로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온, 레지던트인지 인턴인지 모를 젊은 당직 선생님이었다.


일반인인 내게는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을 극악의 난이도의 업무라고 느껴지지만, 지금쯤 그에게는 일상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런 일. 당시 지금의 내 나이쯤 되어 보였던 그분에게는 아직은 익숙지 않은 일로 보이기는 했다. 그들도 그렇게 연습을 하며 직업인이 되는 걸까. 나중에 나는 몇 년을 주기적으로 만나왔던 엄마의 담당 선생님이 그보다 훨씬 전에 우리를 불러 알려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원망을 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일단 정신이 없었으므로 언니처럼 나를 토닥여주던 그 당직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날에도 우리가 '여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을 때까지 그가 먼저 나서서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꺼낸 나쁜 인간이 되기 싫어 모른 척 다른 화젯거리만 빙빙 돌리다가 결국 상대가 먼저 이별을 말하도록 유도하는 나쁜 애인처럼. 돌이켜 보니 우리가 만난 의사들이 모두 그랬던 것 같다. 사진에 대한 판독, 치료법에 대한 설명, 증상에 대한 해석 등 다른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남은 시간에 대해서는 그들이 나서서 먼저 말해주는 법이 없었으므로, 무지몽매했던 우리로서는 엄마의 시간이 그렇게나 끝에 다다라 있었음을 알 길이 없었다.


하긴 대학병원이라는 곳은 늘 1시간쯤 대기한 후 3분쯤 의사를 만나는 시스템이었다. 사실 그마저도 항상 상대방이 대답하기 쉽도록 질문거리를 키워드 중심으로 보기 좋게 적어가서 선생님께 건네며 공손하게 부탁을 드렸기에 아주 감사하게도 3분씩이나 할애해 주셨던 거였고, 그냥 멋모르는 경우에는 1분 남짓이면 끝나는 것이 대학병원의 진료였다. 생각해 보면 여명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우리가 먼저 묻기 전에는 구체적으로 들은 바가 없기는 했다.


자고로 그것이 원래 대학병원과 환자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라는 건데 왜 니가 안 물어봐놓고 역성이냐,라고 나를 탓할 것이므로, 나 역시 알아서 여태껏 입 뻥끗 않고 찌끄러져 있었으니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기를. 하지만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웅크려 앉아서, 그래도 한 사람이 인생을 마무리할 시간을 갖느냐 못 갖느냐를 결정할 정도의 중요한 정보는 미리 말을 해줬어야 하지 않아?라고 혼자 외치고 또 외치며 가슴을 치곤 했다.



그날 저녁 그 당직 선생님에게 물었을 땐 '6개월에서 1년~?'이라고 했고, 며칠 후 호스피스로 옮기며 마지막으로 만난 엄마의 담당의는 '4주에서 6주..?'라고 했고, 그로부터 며칠 후 호스피스의 의사 선생님은 '길면 한 달'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엄마를 보냈다.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하는 나는 상대방이 금전적 손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해, 또 그러한 방식을 통하여 나의 판단을 방어하기 위해 대부분 보수적인 수치를 제시한다. 그런 나의 직업병 때문에 의사들도 그리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그들이 말해준 숫자는 오히려 현실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추정이었고, 정말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야 나는 현실에 가까운 수치를 들을 수가 있었다. 차근차근 준비할 시간은 남아 있지 않았고, 그냥 이별을 된통 당하는 수밖에 없게 된 시점 그 바로 앞에 맞닥뜨려서야.


고작 돈 따위 다루는 일에 생명을 다루는 일을 비유하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안다. 의료진은 신이 아니므로 함부로 생명의 끝을 예측할 수 없음을 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서 때로는 한 마디에 생을 단념하는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해서 때로는 한 마디에 기적을 만들어내는지를 안다. 특히 B2C 중 C(Consumer, 고객)가 열린 대중일 때 의료진이 마주하게 될 각양각색의 어거지와 생떼 또한 예상이 가능하니, 누구든 세상 가장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토픽에 대해 쉬이 입을 떼지 않는 것이 더 합리적인 전략일 거라는 생각 또한 든다.



내가 초딩일 때 엄마가 피를 토한 적이 있었고, 그때 이미 엄마가 죽다 살아났다고 들었다. 금방 발길이 끊길 줄 알았던 엄마가 계속해서 진료를 보러 다니는 걸 보면서 의사들은 오히려 의아해하곤 했다. 엄마의 병력을 듣고 나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지, 와 같은 표정을 짓는 의사들을 수 차례 보았다.


그렇게 긴 세월을 보내다 보니 무뎌졌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이번에도 또 이겨낼 거야 하는 안일함을 품고 살았던 것을 인정한다. 이제 진짜 끝난 것 같아,라고 엄마가 말할 때마다, 엄마 우리 그걸 다 이겨낸 게 몇 번째야 분명 또 괜찮아질 거야,라고 반복하여 말했던 것이 단순히 엄마에게 건넨 위로와 격려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과거 실적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게으른 가정을 바탕으로 한 나의 속 편한 추정이었음에 여전히 이따금씩 화가 난다. 아픈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렵도록 이쁘게 통통하고(?) 늘 밝고 긍정적이었던 엄마 때문에 죽음의 그림자가 그 정도로 가까이 드리웠음을 미처 몰랐다고 한다면 그건 허울 좋은 핑계가 될 뿐이겠지.




허나 그렇게 지나간 시간들을 훑다 보면, 엄마가 나와 무려 30여 년을 건강한 웃음으로 함께 해주었던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믿을 수 없이 놀라운 기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기억이 내 머릿속에, 그 사랑이 내 마음 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 하늘이 내게 베푼 인생 최대의 선물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엄마의 여명이 6개월 남아있던 순간을 미처 모르고 지나친 까닭에 마지막 말들을 마음껏 나누지 못했음이 못내 아쉽지만, 살아온 오랜 시간 동안 엄마의 여명을 그로부터 몇 년 후쯤이라고 짐작하고 매년 그걸 연장하며 살았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가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즐기고, 미루지 않고 매 순간 사랑하고 표현하며 지낼 수 있었던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 덕분에(?) 지금 내가 아쉬움과 후회보다는 슬픔과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음을 안다.


삶과 죽음이 한 끗 차이임을, 덕분에 뼈저리게, 알기에, 내가 당장 오늘 잠들었다가 내일 눈 뜨지 않아도 이상한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매일 밤 잠들기 전 아가와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고 사랑한다 말한다. 여명의 사전적 의미는 '얼마 남지 아니한 쇠잔한 목숨'이라 한다. 내게 남은 이 시간은 과연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순간에 100년을 살았다 한들 아쉽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한정적인 자원이 시간이니까, 우리 함께 하는 시간이 매일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이 아깝고 또 아쉬워 목구멍이 뜨거워지려 할 때마다 나는 자꾸 속삭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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