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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Mar 24. 2021

꽃길 끝에서 헤어진 연인  (ft. 충분해-커피소년)

연인이 꽃길을 걷고 있다.

둘은 이 길 끝에서 헤어질 것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이곳 끄트머리에서 이별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나중에, 언젠가 또 만나자."


"우리 만나는 동안 참 행복했으니까. 그걸로 충분해."

"잊지 않고 다 기억할게."


그렇게 손을 꼭 잡고, 걷고 또 걷는다.




험상궂게 생긴 갈색 불독이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행여나 다칠까 와락 당겨 안는다.


"고마워."

"나도."


"미안해."

"아니야. 전부 다 고마워.”

"나도 그래."


헤어짐을 마음에 품고도 연인은 차분하고 다정히, 길 끝을 향해 걷는다.




공원에는 눈길 닿는 곳마다 그들이 마주했던 과거, 그리고 어쩌면 만날 뻔한 미래가 가득하다.


한때 그들 또한 그 자리에 둘뿐인 듯 한 몸처럼 뜨겁게 붙어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고, 아기를 한 명 낳을지 두 명 낳을지에 대해 꺄르르 떠들었으며, 나중에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네 마네 둘 사이에는 결국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논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길 끝에 닿았다.


"이제 가야겠다.

 잘 지내."


"조심해서 가.

 아프지 말고."


결국 마지막에 남는 말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꽃길의 끝에서 그들은 이별했다.


그리고는 의연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울지 않고 씩씩하게 밀린 빨래를 돌렸다.




얼마 뒤 탕비실에서 텀블러를 들고 서서 벚꽃이 지는 광경을 본다. 꽃잎이 사르르 흩날아 바닥에 내려앉는다. 엷은 분홍빛을 두르고 따스하게 웃던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혼자 남아 푸른 빛으로 갈아입고 있다.


그제서야 운다.

주저앉아 엉엉 운다.


친구가 묻는다.

"왜 헤어진 거야.."


흔한 이별 사유 하나쯤 꺼내어 대답해보지만 사실은 왜 꼭 헤어져야만 했는지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 후로는 아무 나뭇가지나 보고 운다.

벚나무가 아닌데도 그냥, 막 운다.




어느 날 꿈에서 연인을 만나고 깨어나 오늘 만나자고 해야지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찾다가


아맞다,


깨닫고는 또 운다.



그들의 꽃길은 끝이 났다.



충분해 - 커피소년

(...)


그렇게 이별을 맞이할 때

그래 우리 참 애썼구나

충분히 아름다웠구나

우리 여기까지구나


모든 걸 던졌기에

후회 없이 사랑했기에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울 때

이게 마지막이란 걸 알았을까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그렇게 이별을 맞이할 때

그래 우리 사랑했구나

그래 우리 사랑했구나

우리 여기까지구나

그걸로도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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