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겉으로는 분명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어 보이는 중인데도
머릿속에서는 상실에 이르기까지의 날들이 영사기를 틀어둔 듯 계속해서 넘어간다.
딸깍,
딸깍.
되새김질이라도 하는 듯 반복하여 곱씹힌다.
내가 정말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닌데
자꾸만 자동으로 재생되는 장면들.
아픔과 그리움이 범벅이 된 기억에서 아직은 그 둘이 분리되지 않는다.
낮게 깔린 슬픔이 묵직하게 깜깜해서 축축 처진다.
들여다보니
무언가 내게 불편하거나 부당하게 느껴지는 일이 있는 날이면 유난히 그렇다.
무조건, 그야말로 무조건, 내 편이던 이.
옳든 옳지 않든 그 내 마음 다 알아주던 이.
내 기분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했던 이.
그 존재가 내내 사무쳐 목 끝이 뜨겁게 서러움이 찬다.
웬만하면 마무리는 그래도 나는 괜찮다며 희망의 찬가를 부르고자 하는 편이지만
그런 날에는 내 인생이 이미 다 망쳐버린 그림 같아 도무지 못 쓰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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