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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Jun 29. 2015

녀석이 돌아왔다

썸day 둘째 날

“국가란 국민이란 말입니다!”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이 일갈하는 모습을 보며 횡으로 붙은 영화 좌석 한 줄이 모조리 흔들릴 정도로 흐느끼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기에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감동의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갈 찰나, 카톡 하나가 날아왔다. 솟아오르는 짜증을 겨우 억누르면서 스마트폰 액정을 째려봤다.

녀석이었다.

5년 전 바람과 함께 사라진 친척 동생 P. 어디로 갔는지, 뭘 하고 사는지조차 몰라 노심초사하다가, 3년이 지난 후부터는 “이 새끼, 만나면 뒈졌어!”라고 다짐했었는데, ‘이 새끼’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12월 31일, 2013년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속은 부글부글, 손은 부들부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맹수처럼 영화관을 뛰쳐나왔다. 5년간 쌓아놨던 울화를 한숨으로 내쉬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이성의 줄을 겨우 붙들었다. 그래, 일단 상황 파악을 한 뒤 전화해도 늦지 않으리라.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마음을 바꾸고 먼저 동생에게 전화했다.


- 야, P한테 연락 왔었냐?

- 응. 집에 들어갔다던데?


그랬단 말이지. 녀석의 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했다. 두어 번 신호가 갔을까. “어, 형!” 5년 전과 변함없는 그놈 목소리. 마음 깊은 곳 어디선가 그리움이 밀려왔고, 머리끝까지 뻗쳐있던 화는 12월의 찬바람과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5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단 한 통 전화로 좁혀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짐짓 무게를 잡고 입술을 뗐다.


- 너 인마, 어떻게 된 거야.

-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 5년 만인 거 아냐?

- 응, 알아. 미안해요, 형.


스물둘에 집을 뛰쳐나갔으니 오늘이 지나면 스물일곱이던가. 녀석의 말꼬리에는 세월의 흙먼지가 적잖이 묻어있었다. “곧 설이니 그때 만나자. 너, 나한테 혼날 각오하고 와.” 대거리라도 하면 좋으련만, 녀석은 그저 묵묵히 그 말을 받아넘겼다. “그래요, 형. 그때 봐.” 전화를 끊고 하늘을 올려봤다. 별빛이 정수리로 떨어져 가슴 한편을 찌르르 감전시켰다.




약속했던 대로 녀석은 설 당일 외가로 내려왔다. ‘딩동.’ 초인종 소리를 듣고 흐트러졌던 자세를 곧추세웠다. 녀석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거실로 들어섰다. “저 왔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녀석의 시선은 어른들을 향해 한 바퀴 돌더니 나에게로 다가와 멈춰 섰다. “형, 잘 지냈어요?”

오냐, 이 새끼야. 아주 잘 지냈다.

그날은 폭주의 현장이었다. “더덕술 맛이 끝내준다”라고 외치며 목구멍으로 알코올을 쏟아 부었다. 녀석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집을 나갈 당시만 해도 술 한 잔 못했던 녀석은 내 장단에 맞춰 술잔을 바지런히 움직였다. 그날만은 녀석과 그렇게 마셔야 할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녀석과 신림동 한 양꼬치집에서 만났다. 집안 어른들이 있어 차마 못했을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베일에 쌓여있던 녀석의 5년을 듣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다. 빈 소주병이 두 개로 늘어났을 무렵이 되자 분위기는 불콰해졌고, 그제야 녀석은 마음에 담아뒀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떤 일은 절실히 이해됐고, 어떤 일은 굉장히 의아했다. 하지만 난 녀석의 어떤 말에도 물음표를 붙이지 않았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었고, 그 일들이 지금의 녀석을 빚어냈을 터. 날카로운 속세의 바람에 여러 번 베였을 녀석의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난 녀석의 일대기를 그저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녀석이 가족들에게 “사실 저 이러기도 했어요”라고 말을 꺼낼 때, 그때 아는 척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녀석의 아픔이 추억으로 발효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터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녀석의 가출은 명분이 있었다. ‘가족과의 5년’이라는 커다란 희생을 치른 대신 ‘꿈’과 ‘인생 풍파에 대한 내구성’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출혈이 있는 거래였지만, 그럼에도 꽤 괜찮은 등가교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녀석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녀석의 행동을 100% 지지할 수만도 없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가족이었다.

“P는 어떻게 됐냐?” 일가친척이 모이면 늘 이 말로 말문을 트곤 했다. 풍족한 명절상 앞에서 녀석의 끼니를 걱정했고, 추위가 몰려오면 녀석의 건강을 걱정했다. 차라리 개차반처럼 살지언정 눈앞에서 어른거리기를 바랐다. 녀석의 몸은 가족과 떨어져있었지만, 언제나 가족과 함께였다. 


양꼬치집에서 소주를 기울이던 그날, 녀석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안 했다. 대신 가족들의 마음만을 말하고 또 말했다. 녀석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 없이 지낸 5년, 그 모진 시간을 견뎌내고 돌아온 P. 그 소중함은 누구보다도 녀석이 절절히 느꼈을 것이었다. 어느새 시침이 ‘12’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 난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 야, P.

- 왜, 형?

- 이제 웬만하면 나가지 마, 인마.


나의 노파심에 녀석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 걱정 마, 형. 가족을 두고 어딜 가겠어.


지난 5년간, 녀석에게 듣고 싶던 말이었다.




※ 2014년 2월, 블로그에 게재된 글을 고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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