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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Jul 03. 2015

쓰는 일에 정신 팔려 쓰는 것을 잊어버렸다

썸day 셋째 날

이래서 ‘좋아하는 일은 직업이 되면 안 된다’고 한 것일까. 

코웃음으로 넘겼던 말인데 이제는 음절 하나하나가 뼈아프다. 


내 문장이 까마득하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작은 노트에 빼곡히 적어놓고, 강아지마냥 친구 옆에 붙어서 “이거 한 번 볼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했던 입술의 떨림. 삐뚤빼뚤 악필로 썼던 그 어설픈 글이 그립다.


내가 원한 건 무엇일까. 글이었을까, 글 팔아 받는 돈이었을까. 단 하나 있는, 그마저도 앙상한 재주에 무턱대고 인생을 맡겨버린 건 아닐까. 겹겹이 쌓인 번민 속에서도 팩트는 존재한다. 

‘쓰는 일’이 ‘쓰는 것’을 밀쳐냈다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내 문장이 없다는 것. 

복기해보면 나의 바람은 결코 나에게로 향해 있지 않았다. ‘나 이렇게 돈 벌고 있어. 사람 구실 하고 있어’라는 외침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글 안에 내가 없었기에 글로 먹고산다는 자존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쓰는 것’을 멈춘 게 패착이다. 팔리지 않는 글일지라도 썼어야 했다. 한 문장, 한 단어를 돈으로 세기 시작한 그 순간 지옥불은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나를 좀먹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마음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그런대로 현상 유지할 만큼은 팔면서도 왠지 답답했다. 그 이유를 먼 곳에서 찾으며 헛걸음 했다. 답은 눈앞 모니터에, 손끝 키보드에 있었음에도. 하루에도 꼭 한 번은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이들을 애무하면서도. 

본성이 염세로 쏠려있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그냥 그런 거다, 자위해왔다. 

김영하가 불쑥 찾아온 것은 이런 와중이었다. 흔한 만남으로 여기고 읽어나갔다. 공감과 놀람이 이어졌다. 허나 뇌리에 박히지는 않았다. 별 소득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가 손목을 잡아챘다. 잠시만 더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아직 하고픈 말이 남아있다고.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 김영하 산문집 <보다> 中 -


이 얘기를 하려고 저를 붙잡으셨던 거군요. 그래서 지금까지 당신을 가방 안에 모셔왔던 거군요. 이제는 제가 당신을 놓아드리고 싶지 않네요. 날카로운 칼끝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가슴팍 정중앙에 깊게 새겨놓고 싶네요.


돈이 아니고서는 좀체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이, 이 문장을 읽자마자 근질거렸다. 다시 한 번 키보드 위에서 춤추고 싶었다. 미친 듯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모니터 속 문장을 보고 혼자 낄낄거리면서, 조악할지라도 날 것 그대로의 내 글을 친구에게 내밀던 그때처럼 가슴 설레면서, 그렇게 써보고 싶어졌다.


웃는다, 입이, 눈이, 비로소. 팔리지 않을 문장을 써 내려가면서. ‘쓰는 일’이라는 코르크 마개를 빼내니 주르륵, 그간 쌓였던 욕망이 피고름 되어 쏟아져 나온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 난 변태였나 보다.

다시 일상을 생각한다. 스마트폰 알람에 기상 시간을 입력하고, 메모장에 대략적인 일정을 정리해놓는다. 입을 옷을 점검하고, 필요한 소지품을 차곡차곡 준비한다. 또 다시 ‘쓰는 일’로의 회귀다. 하지만 이젠 숨 쉴 수 있다. 강을 건넜던 임이 돌아온 터다. 


신난다.




※ 2015년 2월, 블로그에 게재된 글을 고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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