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天命), 복숭아나무만이 복숭아꽃을 피운다

by 플레이어블

우연은 없다


쿵푸팬더 이야기는 국수집 아들로 자라난 평범한 팬더 포가 평화를 수호하는 전설 속 영웅 ‘용의 전사’로 점지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서 시작한다. 대사부 우그웨이는 일찍이 용의 전사 자리를 노려 세상을 어지럽힌 악당 타이렁의 탈옥을 예감하고, 진정한 용의 전사가 혼란을 잠재울 수 있도록 시푸 사부가 다년간 훈련시킨 5인방 중심 대결을 준비한다.


쿵푸 영웅에 대한 선망을 갖고 자란 포는, 자신이 용의 전사가 되리라는 기대는 조금도 갖고 있지 않다. 포의 바람은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포의 현실은 사원 계단을 올라가는 것조차 녹록지 않고, 결국 포는 대결 시간을 맞추지 못한 채 사원 담장 밖에 남겨진다.


닫힌 문과 높은 담은 포가 용의 전사가 되기에 얼마나 부족하고, 자격 없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것 같다.어리석은 실수가 이어지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포는 대결이 끝나기 직전 마침내 화약 폭발과 함께 담장을 넘고, 용의 전사를 가리키는 우그웨이의 손가락 앞에 추락한다. 대사부는 용의 전사를 지명하려는 순간에 하늘로부터 날아온 포가 ‘용의 전사’가 될 운명을 지녔다고 확신한다.


시푸는 달랐다. 대사부가 쟁쟁한 5인방이 아닌, 실력과 품성, 심지어 성장 기대감도 갖기 어려운 포를 용의 전사로 결정한 것에 크게 반발한다.

그리고 이어진 복숭아나무 아래의 논쟁.

포의 출현은 단지 우연한 사건이라 말하는 시푸와 세상 만물과 만사에 우연이란 없다고 일갈하는 우그웨이. 이 장면은 천명(天命)을 주제로 하는 유교 철학의 단면을 드러내어 준다.



유학에서 ‘천’은 ‘자연’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인간 또한 자연에 속한 존재로서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순리라 여겼다. 우그웨이가 복숭아나무의 예를 들어, 사람의 뜻대로 꽃과 열매를 맺는 시기를 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푸는 나무를 어디에 심을지, 언제 열매를 딸 것인지는 사람이 정할 수 있는 일이라 반론한다. 우그웨이는 인간이 노력하여 바꿀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복숭아나무가 아니라면 무엇도 복숭아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말로 모든 자연 존재의 역할과 행동 근거가 되는 ‘천명’이 뜻하는 바를 설득한다.

시푸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말한다


하늘이 정한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동양의 사유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저항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수동적 언어가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더하여 신분제를 중심으로 강력한 정치 체계로 상징되는 유학적 봉건 사회의 모습으로 인해, 설익은 눈으로 바라본 천명론은 부조리한 사회 유지를 위한 기득권 논리라 폄하되기도 한다.


진정, 유학의 가르침이란 태생적 한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라 강권하고 있는 것일까?

공자는 스스로의 삶을 통해 "결코 그렇지 않다" 고 몸소 행동으로 답했다. 공자가 꿈꾸었던 도덕 정치의 이상은 타고난 귀족 신분을 세습하여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당대의 흔한 정치 풍속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말 그대로 혁명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삼았다. 그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돌보는 덕행을 실천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서, 자연의 섭리를 따라 선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평생 수양하고 성찰하는 사대부를 육성하여 군왕의 조력자로서 세습 귀족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되기를 꿈꾸었다.


공자의 사상에서는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가 곧 그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일들을 정당화 하는 논리가 될 수 없다. 군왕 또한 기존 제도와 정치 권력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천명을 받들어 끝없이 문제 의식을 갖고 올바른 제도와 인재 운용 방식을 혁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의 생각이 당시 천하를 주름잡던 군왕과 위정 세력의 비호 논리였다면, 주유천하가 실패로 돌아갔을리 없다.


그러나 공자는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 존재가 갖는 귀한 가치는 동일하고, 따라서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있음을 주장함으로써 그의 정치관은 기득권의 논리와 대치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 초대 사회과학원장을 지낸 곽말약은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도 공자를 봉건세력의 수괴가 아닌 봉건타도에 앞장선 혁명가로 높이 평가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후대에 공자의 가르침이 위정자들의 사욕을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었다 해도, 그들의 잘못된 적용 때문에 유학의 본질과 진리 자체가 그릇된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쿵푸팬더가 전달하는 ‘천명’ 개념은 동양의 눈을 지닌 우리에게도 각별하다. 공자는 하늘을 인간 의지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인격화된 신,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의 지배자로 사유했고 ‘천명’은 하늘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 보았다. 또한 동시에 만사 만물의 탄생과 소멸, 복잡한 인과 관계로 얽힌 크고 작은 사건들 모두 하늘의 경지에서 비롯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운명 앞에 무기력해지거나, 아무 노력 없이 편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천명을 두고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천명은 인간에게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를 부여한다.

그러나 숙명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할 때, 주어진 천명 안에서 인간은 또 다른 측면에서 거대한 한계처럼 여겨지는 현시점의 자기 능력을 끝없이 넓고 깊게 성장시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설익은 인간이 자신의 천명을 거부한 채, 다른 이의 것을 갖고자 한다면 그 무모함으로 인해 화를 입는다. 남의 것을 빼앗아, 거짓된 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그웨이는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하늘의 뜻, 천명으로서의 역할을 말한다

그래서 공자는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고, 천명을 바로 알고 따르기 위해 부단한 수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라는 말은 공자 자신의 몫으로 하늘이 부여한 뜻, 즉 천명을 따라 선을 행하는 가능성인 덕명을 키우는 도덕적, 운명적 삶을 자연스레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최문형은 이를 가리켜 지명은 표면상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능동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운명에 대처하는 생활태도라 정리한다.

공자는 14년에 걸쳐 자신의 도덕정치를 채택할 군주를 찾아다녔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다

공자가 당시로서는 은퇴가 가까운 나이 55세에 주유천하에 나선 까닭도 자신의 뜻과 지혜가 옳은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마땅하다거나, 공명을 얻을 것이라는 계산이 아니라, 깊은 좌절을 예감하면서도 바른 것을 세상에 알리고 행하여 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제 역할에 끝까지 매진하려 한 사명의 실천에 있었다. 최문형은 이를 가리켜 지명은 표면상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능동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운명에 대처하는 생활태도라 정리한다.

쿵푸팬더 시리즈에서 평화의 파괴자로 등장하는 타이렁, 셴, 카이는 공통적으로 다른 이의 천명을 욕망한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용의 전사나 기를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자가 될 수없는지 분노하고 좌절하며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들은 답을 찾고자 하지만, 천명론의 관점에서 하늘의 뜻에는 이유도 없고 또한 우연도 없다.


결국 나름대로 빛나는 재능과 자질을 지니고 있었던 이들도 용의 자신과 타인의 삶을 우열 관계로 비교하면서 자신의 천명으로는 더 큰 힘을 갖거나 더 큰 사랑을 받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에 시달리다 선 대신 악을 행하는 괴수가 되어 버린다.

천명을 바꾸려 하거나, 다른이의 천명을 탐한다


그러나 천명에 대한 믿음은 천명을 충실히 다하겠다는 인간 의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복숭아로는 타이렁을 당할 수 없다고 한탄하는 시푸에게 우그웨이는 포를 믿고 사랑으로 지도한다면 꼭 그렇지많은 안다는 가르침을 남긴다. 결정된 승부는 없으며, 최선을 다함으로써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사부로서 전사를 가르치는 역할, 전사로서 사부를 따르는 역할은 시푸와 포 각자의 서로 다른 천명이다. 그리고 주어진 운명에서 서로를 향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을 우리는 사명이라 부른다. 천명을 받을도 사명을 다할 때, 우그웨이가 그러하듯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가능해지고 여유와 자유, 내면의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명, 복숭아나무만이 복숭아꽃을 피운다.

자신이 복숭아나무라는 것을 알면 더 풍성한 복숭아꽃과 열매를 맥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복숭아나무가 아닌 것이 복숭아꽃을 피우려는 노력 대신, 제 몫의 꽃과 열매 가꾸기에 최선을 다하라.

복숭아나무와 귤나무, 용의 전사와 5인방, 용의 전사를 알아보는 자와 키우는 자,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천명을 따를 뿐 천명의 사이에 더 낫거나 부족한 것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쿵푸팬더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유가의 진리 하나가 또 숨겨져 있다.


(다음 회, 계속)



Reference:

최문형 (1998). 공자(孔子)의 천명론(天命論)과 귀신관(鬼神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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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김형찬 옮김. (2015). 논어. 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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