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 국수의 장인이 알려주는 천명자각의 방법론

천명(天命), 복숭아나무 만이 복숭아꽃을 피운다 (1/2)

by 플레이어블

비법도 없다


천명은 하늘의 뜻이라는 웅장한 이름으로 인해, 인간 존재를 초월하여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영적 대상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유가 사상을 수동적이라 평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천명에 대한 외재적 인식을 갖고 있고는 하는데, 그로인해 생의 십자가 혹은 불가항력의 운명으로 해석되는 일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명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천명론을 연구해온 송인창에 따르면 공자 이전에 하늘이 신비로운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자가 천명을 인성에 내재한 도덕을 통해 ‘나’의 내부로부터 자각된 인간 본성으로써, 본격적으로 유학의 사상적 틀 안에서 천명이 ‘인(仁)’과 분리되지 않는 인격 존재로 형상화되기 시작하면서 동양에서도 하늘의 명에 대한 근본적 태도 변화가 발생하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유학의 천명이란 도덕적 인간 존재로서 나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천명에는 귀천함이 없고, 더 큰 것과 작은 것도 없다. 그것은 다른 것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개인의 천명은 다양성보다 우월성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일은 흔하다. 쿵푸팬더에서 발생하는 많은 갈등이 가장 우월한 역할로 여겨지는 ‘용의 전사’를 두고 촉발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회에 만연한 서열주의는 아주 사소한 차이에도 격한 위계를 만들어 낸다. 포가 양아버지인 펠리컨에게 국수보다 더 크고 멋진 일을 해보고 싶지 않았는지’를 물어보았을 때 펠리컨은 철없던 시절, 국수의 장인보다 대단한 일을 동경했노라 고백한다. 그 꿈은 바로 두부의 장인이 되는 것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웃음이 터지지만 천명의 차이를 왜곡하는 우리의 잘못된 시선을 보여줌에 모자람이 없는 장면이다. 국수와 두부의 차이를 차별로 대하는 잘못된 세태를 동양의 지혜는 어리석다고 지적한다.



국수보다 더 큰일, 두부.


맹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천명은 제 마음을 다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

이것은 곧 하늘을 깨닫는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유학에서 ‘천(天)’의 의미는 다양한 맥락에 걸쳐 사용되는 만큼, 천명에 대한 해석도 다양할 수 있다.


유남상은 이러한 해석의 여지를 인정하면서도 분명한 한 가지를 지적했는데, 그것은 바로 천명이란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부여된 실천적 사명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유가의 관점으로 천명을 안다는 것은 외부의 절대 권능에 그저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성찰과 부정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성질 그리고 역할을 되찾는 과정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능동적 실천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천명을 어떻게 자각할 수 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각(自覺 ) 개념을 바르게 헤아리는 것이 우선이다. 유학의 성찰에서 자각은 본디 감각적 차원에 놓여 있지 아니하다. 무엇보다천명의 자각은 실천과 결부된 성숙한 앎의 상태를 뜻한다. 그저 머리로 인식하는 지식과는 상관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주체로서 인간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포괄적 깨달음의 과정 전체를 칭하는 개념이며 자신이 무엇에 전념하여 행할 때, 비록 그것이 아주 힘든 것이라 해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천명의 자각이다.


어찌 보면 쉬운 일이다.

동양의 사상은 남이 보기에 그럴듯하고 화려한 일이라 해도 그것을 행할 때 내가 느끼는 진정한 즐거움이 없다면 나의 천명은 아니라는 비교적 단순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실한 실천 속에서 내면을 진실 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과정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자기 실천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을 얻는 경로라는 점에서 자득(自得)이라는 용어가 권유되기도 한다.


다시 쿵푸팬더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팰리컨은 국수를 만드는 일을 ‘내 안에 흐르는 피’라고 말한다. 국수 장사는 그의 마음뿐 아니라 몸과도 분리될 수 없는 하나 된 것이다. 펠리컨은 누구보다 열심히, 어떤 상황에서도 더 맛난 국수를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할 방법에 대해 궁리한다. 그 얼굴은 밝게 빛난다. 남들이 추앙하는 쿵푸 사부나 전사가 아닌 것은 대수롭지 않다.


국수의 장인, 그 계보엔 또 다른 출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펠리컨은 두부의 장인이 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국수를 만들게 된 것이 아니다.

상황 설명에 사용한 표현들이 국수를 두부보다 낮춰보는 경향이 여전한 듯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펠리컨의 착각은 제 아들이라면 당연히 자신과 같은 일에서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중반을 지나면서 펠리컨은 양아들 포가 위험하고 힘들더라도 진정한 즐거움을 향한 그만의 길을 발견했음을 인정한다. 포가 그 길을 선택한다면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외면한다면 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도 펠리컨은 잘 알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국수의 장인 펠리컨은 위대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고, 소란스러운 언행 때문에 얼핏 우스꽝스러운 역할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철학적 심층에서 그의 역할은 각별하다. 펠리컨은 제 천명을 자각한 자이다. 더욱이 그의 깨달음은 비록 자신의 기대와 희망과는 다를지라도 독립된 존재로서 아들의 천명까지 존중할 줄 아는 세속의 현자로 등장하고 있다.


비어있는 용 문서를 보며 용의 전사되기를 포기한 포에게 펠리컨은 국수의 비법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비법 소스는 그런 환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펠리컨이 만들어 낸 위약과도 같은 것이다.



펠리컨은 말한다.

특별함이란 내가 나를 믿는 것, 그것을 사심 없이 정성을 다해 실천하는 동안의 내 기쁨을 느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쿵푸팬더 이야기는 양아버지 펠리컨을 통해서 여느 위대한 스승들도 쉽게 설명하지 못한 군자의 도리를 실천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어떤 경우에도 사명을 다하는 국수 장인으로서의 정성 어린 태도와 특별함에 대한 그의 지혜를 빌어 쿵푸팬더 이야기는 천명이란 무엇이며 천명의 자각에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우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Reference:

송인창. (1995). <周易>에 있어서 天命自覺의 方法. ≪儒學硏究≫. Vol.3. 405-441.

송인창. (1992). 선진유학(先秦儒學)에 있어서의 천명자각의 문제. ≪동서철학연구≫.Vol.9. 83-117.

송인창. (1984). 유가사상에 있어서의 천명의 자각과 인간존재. ≪동서철학연구≫.Vol.1. 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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