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론(理氣論)을 말하다

모두 같은 팬더, 모두 다른 팬더

by 플레이어블

카이와 우그웨이, 두번째 대결


쿵푸 팬더 세 번째 이야기는 2편의 말미에 영혼계로 터전을 옮긴 우그웨이 대사부가 숙적 카이의 공격을 받아 기(氣)를 빼앗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500여 년 전, 그들은 가장 친한 벗이었으며 카이는 심한 부상을 당한 젊은 우그웨이를 신비한 치유능력이 있는 팬더 마을로 옮겨 대사부가 목숨을 구함을 물론, 기를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은인이기도 하다.


그들의 우정은 카이의 변심으로 인해 균열된다. 기가 지닌 엄청난 힘을 알게 된 카이가 그것을 독식하려는 욕망을 품었고 그 잘못됨을 알고 있었던 우그웨이는 친한 벗의 폭주를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대결에서 패한 카이는 영혼계에 감금되었지만 기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졌고, 기를 마스터 하지 못한 슬픔과 분노는 광폭한 복수심으로 변질되었다.

기(氣)란 무엇인가


카이가 쿵푸 마스터로 부터 빼앗으려 하는 힘,

기(氣)란 무엇인가.


사실, 세 번째 이야기의 중심인 기라는 소재는 동양적 이미지로 소비되기에 벅찬, 깊이 있는 사유 전개가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유학에 있어 기를 논한다는 것은 이기론(理氣論)을 통해 만물의 존재론적,

윤리적, 생성적 사유를 전개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리와 기의 관계에 대한 유학의 기본 명제는 나뉠 수 없으며 동시에 섞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논리적으로 풀이하는 이론과 구조는 여러 분파가 존재하며 우리나라에도 퇴계와 율곡, 고봉 등을 위시한 학자들은 특색 있는 해석과 논거를 통해 독자적 이기론을 정립 시켜왔다.


먼저, 퇴계는 이와 기가 서로 뒤섞을 수 없이 다른 것이라는 점에, 율곡은 그것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평가된다. 퇴계는 이가 기보다 귀하다, 이가 기에 앞선다는 주장을 통해 이의 본연성을 강조한다.


율곡은 이와 기는 떨어지지 않는 하나이며,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기가 이를 포함하게 된다고 보았다. 결국 현실적으로 삼라만상의 속성과 형질을 드러나게 하는 기를 특별히 중시했다.


카이는 전설적 쿵푸 마스터들이 지닌 각기 다른

개성과 능력, 곧 그들의 기를 탐낸다. 타인의 기를 더함으로써 내게 없는 것들을 채우겠다는 끝없는 욕심이다. 그는 다른 이의 기를 빼았는 법을 수련하여 강한 힘을 키운다. 이때 카이를 지배하는 것은 사리를 살피는 인간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비교해보자.

우그웨이와 포가 카이의 탐욕을 막으려 할 때, 시푸가 자식처럼 양육한 타이렁을 제압할 때, 펠리컨이 엄마를 잃고 버려진 아기 팬더를 거두었을 때 드러난 것은 옳고 그름, 부끄러움, 겸손, 불쌍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같은 인간의 선한 본성, 즉 리(理)에서 발생한 사단(四端)이었다.


타이렁을 제압한 시푸 사부

버려진 팬더를 거두는 펠리컨

자신을 희생해 영혼계로 카이를 돌려 보내는 포


올바른 기 수련법


카이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한때 촉망받는 용사였고, 이후 영혼계에서 500여년 간 수련하여 언제나 옳고 선한 본성을 회복할 수도 있었던 카이는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채 선할 수도 혹은 악해질 수도 있는 기에 집착함으로써 리와 기의 균형을 잃고 칠정에 포획 당한 채 분노와 슬픔, 격정에 포획당하고 말았다.

세상만물이 모두 리와 기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자기 자신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생명에 대한 존중, 즉 이를 통해 기를 다룰 수 있는 자가 진정한 기 마스터(master of chi)이며 이들은 단순히 강한 기를 지닌 자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카이와 대적 할 영웅은 바로 이의 본체를 지켜 기에 굴절되거나 얽매이지 않는 마스터여야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 에너지로 발현되어 천차만별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기질을 통제하여 그것이 선한 인간 본성을 어떠한 경우에도 가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퇴계는 리 개념이 가지는 절대성과 순선함, 그리고 ‘리발’ 개념을 현실 세계에도 받아들였다. 이를 ‘사단 = 본연지성 = 순선함 = 리’, ‘칠정 = 기질지성 = 선악미정 = 기’로 구분하여 양자 대립을 통해 차이를 이해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고봉과 율곡은 태극의 이념 차원과는 달리 현실 세계에서 리기 관계는 사실상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고 판단했다. 이들의 이론에서는 사단칠정에 리와기가 섞여 있으며, 기질지성의 선한 측면이 본연지성, 사단을 칠정에 속한 것으로 보아 칠정도 본디 선한 것이라는 통찰을 제시했다.


이들에게 특정한 기질은 리로 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관계로 해석된다. 다양한 기질 안에 내재된 성향이 기를 수련하여 이를 맑고 고요하게 다스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리가 드러나게 된다고 본 것이다.


쿵푸팬더 이야기가 학자들의 철학적 명제를 예리하게 변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스터들이 기를 수련하는 태도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진정한 의미로 기를 마스터 했다는 것은 단지 강한 기질을 여러 개 습득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정한 내가 되는 것, 기 마스터의 출발점

기 마스터가 되기 위해 우그웨이, 포, 시푸 모두 선한 본성이 흐려지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각각의 차이를, 서로 다른 기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당신은 내가 될 수 없다. 될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생명을 지닌 팬더라는 점에서 같다. 동시에 다양한 개성과 자질,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도 같지 않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지키는 것, 자신의 참 모습에 충실하려는 것, 그것이 바로 기 마스터가 되기 위한 시작점인 것이다.



Reference
양승무.(2005). 퇴계와 율곡의 이기심성론 (理氣心性論) 비교연구. 유교사상연구, 22(단일호), 249-278.

김시표. (1999). 퇴계선생(退溪先生) 리기론(理氣論)의 소고(小考). 퇴계학부산연구원. Vol.5. 154-174.

황지원. (2017). 기대승의 리기심성론과 사칠론. 동아인문학. Vol 38. 27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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