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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어블 Jun 23. 2017

슈퍼 파워 활용법

게임 싱킹과 디자이너의 윤리

게임 싱킹의 윤리학


게임에 관한 다양한 편견이 여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싱킹, 게이미피케이션, 게임적 혹은 놀이적 디자인 등 게임 관련 새로운 개념어 출현과 이에 대한 관심 증가가 이어지고 있다. 역사서를 뒤적여, 문화 인류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게임이 현대인들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게임의 영향은 이미 구현된 최종 결과물로서 게임이나 게이미피케이션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삶을 즐거움으로 채우는 게임과 놀이 경험을 만들기 위해 게임 디자이너들이 단련해온 고유한 생각법, 즉 게임 싱킹은 의도된 경험 디자인이 플레이어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절차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게이미피케이션 개념이 부상하던 초기 시점에,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는 게임이 이윤 추구 집단인 기업 목적에 복무하는 상황을 두고 ‘착취’라는 격한 용어를 사용하며 우려를 표했다. 물론, 게임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대상 혹은 결과물로서 게이미케이션과 게임 디자인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하는 경험 설계 과정인 게임 싱킹을 동치의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두 개념 모두 게임을 활용하여 인간 인식과 판단, 선택 행동에 계획된 영향을 주려한다는 점에서 같은 윤리적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게임 싱킹을 혁신의 방법론으로 주목하는 것은 이 방법론이 혁신 추진 세력의 의도를 사용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혁신 목표 달성을 위해 설계된 경험에 따라 사용자의 생각과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의 치밀한 설계에 의해 사용자가 변화하는 도구를 만드는 과정은 정당한 것일까. 여러 방향과 관점에서 게임을 다른 분야와 융합하려는 사람들은 게임의 힘이 의도대로 작동하였는지에 모든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게임의 힘을 신뢰하는 진영 논리처럼, 게임의 힘이 막강한 것이라면 먼저 그 힘의 활용 윤리에 관한 비판적 검토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게임 싱킹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거친 표현을 쓰자면, 조정하고 개입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 게임 디자이너가 현실 영향이 크지 않은 가상적, 환상적 환경에서 경험 설계를 전개한 것과 달리, 오늘날 게임의 힘을 다양한 현실 일상에 도입하려는 새로운 노력은 그와 비교 불가한  넓은 범위에서 직접적 현실 영향을 목표로 수행된다는 점도 경험 디자이너들에게 윤리적 성찰을 요구하는 타당한 근거가 된다. 


게임 싱킹을 단순 반복적인 디자인 기법 생각한다면 윤리적 검토가 소홀히 다루어질 수도 있다. 또 게임을 다른 분야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많은 서적들조차 게임 도입의 적합성을 유희성 같은 맥락적 문제에 한정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게임 싱커들이 고려해야 하는 윤리적 점검 항목 2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① 변화의 궁극적 목적: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디자인 목적을 심층에서 살펴본다. 정당한 고객 보상이나 임금 지불을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인간을 실적 달성을 위한 기계 부품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실제 가치를 속여 잘못된 판단을 부추기기 위한 목적은 아닌지 생각한다. 변화를 추구하는 디자인 목적이 윤리적이지 않다면, 게임 싱킹은 결코 윤리적일 수 없을 것이다. 


변화 목적에 대한 질문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습관 형성 디자인 이론 훅(Hook)의 제안을 차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훅 모델은 습관과 중독의 미묘한 의미 차를 검토하면서 ‘내가 이것을 시도해도 되는가?’를 질문하는 조종 매트릭스 활용을 조언했다. 조종 매트릭스 가로축은 설계자의 자기 제품 혹은 서비스 사용 여부로 나눈다. 세로축은 그 제품, 서비스가 사용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더 나아지게 하는가를  묻는다. 각각의 축에 의하여 특정한 조종 행위의 시도는 조력자, 장사꾼, 오락가, 마약상의 위치를 획득한다. 


hooked, manipulation matrix

디자이너도 기꺼이 사용하고 사용자의 생활도 바람직하게 개선시킬 것이라 믿는 무언가를 목표한다면 건전한 조력자로 볼 수 있다. 사용자에게 유익하고 효과적인 양 포장하지만, 정작 자신이 설계한 서비스를 사용할 생각이 없거나 필요하다 여기지 않는다면 장사꾼으로 분류된다. 이와 달리, 자신에게는 필요하고 사용 의향 있는 것이지만 타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는 무엇을 의도한다면 오락거리를 개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마지막 분류는 윤리적으로 가장 나쁜 경우에 해당한다. 설계자는 변화 의도가 사용자 생활을 개선시키지 못하고, 심지어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라면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경험을  설계하는 것은 소위 마약상 같은 행위이며 이기적 돈벌이로 비난받아야 한다. 


② 자율성 공급: 

게임 싱킹은 좋은 게임을 만드는데 효과를 보였던 방법론을 게임뿐 아니라 게임 외적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한 이론이다. 좋은 게임을 판단하는 기준과 시각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공통의 특징 하나를 꼽는다면, 플레이어의 자율성(autonomy)에 기초한 즐거움을 생성한다는 점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율성은 상관성, 자신감과 함께 인간이 즐거움을 느끼는 맥락 형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자율성은 외적 자극 혹은 보상으로 활용되는 물질 기반의 단순 보상, 체벌, 경고와는 정반대 지점에서 자유 의지, 목표와의 조화로 구성된 내적 동기와 연결을 갖는다. 


세바스찬 디터딩(Sebastien Deterding)은 게임이 모티베이션과 인게이지먼트를 지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원리로써 자율성에 주목했다. 그의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 싱킹이 인간의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능 차원의 효율 향상에만 집중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을뿐더러 궁극적으로 혁신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사용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디자이너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변화를 시도하는 상황이 사실상, 그것 이외의 선택 항목이 없거나 의무적인 선택으로 강요되는 것이라면 게임 싱킹의 윤리적 정당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게임 싱커와 유대모닉 디자인


게임 싱킹과 게이미피케이션의 관계를 집합 간 포함 관계로 살핀다면, 후자가 전자의 충분조건, 전자가 후자의 필요조건으로 정리될 수 있다. 게임 싱킹은 게임, 게이미피케이션뿐 아니라 그에 관한 명확한 명칭이 아직 없는 상태라 해도, 자율성을 지닌 인간의 즐거운 경험을 기반으로 변화를 도모하는 모든 상황 설계에 적용 가능한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 싱킹의 핵심인 포괄성, 원형성, 전체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을 도구화하는 성급한 시도가 이어지면서 게임 기반 혁신 활동은 왜곡되거나 기대한 만큼의 성공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인류 문화와 매체 사에서 실증되어 온 게임이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지는 상황이라면, 게임의 힘은 성공을 보장하기 때문에 마법적인 것이 아니라 적합한 통제와 활용법을 숙지하지 못한다면 예상치 못한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슈퍼 파워로 지칭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게임 싱킹의 본질을 재확인하는 반복적 각성이 필요하다. 


① 게임 싱킹은 사용자의 능동적, 자율적, 지속적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이며, 특히 즐거움을 경험 형성의 기반으로 삼는 맥락에 적합한 설계법이다. 게임 리터러시는 게임 외적 분야에도 다양한 접목이 가능하지만, 게임 싱커가 놀이의 관습과 문화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적합한 경험 설계에 도달하기 어렵다. 


② 경험 설계 기법으로서 게임 싱킹은 동기부여, 행동 유도 디자인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 같은 변화는 부분이 아닌 전체 경험 시스템 차원에서의 문제 인식과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 주어진 문제 상황에 게임 디자인의 몇몇 물리적 요소들을 첨가하는 것만으로는 기대한바 궁극적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③ 게임 싱킹은 상황 논리를 포함하는 접근법이다. 게임 싱킹을 게임 외적 분야에 적용할 수 있지만, 그 방법론의 작동 체계가 게임과 놀이 맥락과 경험 시스템 최적화에 근거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타당한 행동과 생각이라는 것은 본디 매우 상황적인 것으로, 사회적 관습과 규범 속에서 복잡하게 정의되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 싱커는 의도한 변화가 허용되는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먼저 고려한 뒤에 나머지 경험 유도 전략을 정교화해야 한다.  


④ 게임 싱킹을 단지 신속한 문제 해결 도구로 바라보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게임이라는 매체를 모태로 삼아 발전한 게임 싱킹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질적인,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도 유용하다. 조력자로서 디자이너의 바람직한 태도는 사용자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보다 사용자가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고 주어진 상황에 대해 건강한 저항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에 있다. 


디터딩은 비판적, 변형적, 사회 문화적 시스템 디자인을 통해 게임의 힘을 활용하고 확장하는 것을 유대모닉 디자인(eudaimonic design)의 실천으로 판단했다. 아리스토 텔레스(Aristotle)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차용된 용어, 유대모닉을 번역하자면 행복주의 정도가 적합할 것이다. 즉 게임 싱커는 인간의 삶을 행복과 즐거움으로 채우는 역할을 맡아온 게임 만들기의 방법론을 통해 유대모닉 디자인에 기여한다.  


인공적 사물, 서비스, 상황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의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인간의 행복, 개선된 삶에 관한 윤리 의식을 갖춘 많은 게임 싱커의 출현은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된다. 나아가 게임 싱커들은 게임을 일차원적 도구, 혹은 하나의 내용을 담은 콘텐츠로 인식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임을 인간 경험과 감각을
폭넓게 활성화시키는 놀이 맥락 하에서
자율성, 능동성, 지속성을 갖춘
이상적인 경험을 유도하는
통합 시스템으로 바라보자. 


그러한 게임을, 무엇보다 좋은 게임을 만들어 온 디자이너의 생각법은 지금까지 밝혀진 법칙 이외에도 더 다양한 상황에서 그렇게 해야 하거나, 혹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많은 주의 사항과 활용법을 미지의 단계에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이것을 깊이 있게 탐구하여 일반화된 방법론으로 정교화시키는 것 또한 게임 싱커의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Reference:

Bogost, I. (2011). Gamification is bullshit. The gameful world: Approaches, issues, applications, 65-80.

Eyal, N. (2014). Hooked: How to build habit-forming products. Penguin.

Kim, A. J. (2016). Game thinking, Explained. Retrieved from http://bit.ly/2sx5UhP 

Leonard, T. C. (2008). Richard H. Thaler, Cass R. Sunstein, Nudge: Improving decisions about health, wealth, and happiness. Constitutional Political Economy, 19(4), 356-360.

Walz, S. P., & Deterding, S. (2015). The gameful world: Approaches, issues, applications.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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