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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어블 Apr 01. 2018

SNS와 정체성 놀이

내 뜻대로 나를 만드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놀이다

3P 모델

SNS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 가상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 나의 생각과 감정, 경험을 표현하며 연결을 이어가는 디지털 시대의 놀이터다. 모든 선택과 행동의 중심에 나 자신(self)이 존재하기 때문에, SNS는 결국 나에 관한 정체성 놀이 성격을 띄게 된다.


 특히, 근대 이후 기술 발전 함께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성장하면서 정체성은 절대적, 고정불변의 것에서 상대적이며 유동적인 개념으로 변했다. 이를 통해 SNS에서의 정체성 놀이는 현실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상과 바람을 담은 변이와 조작을 허용하는 폭넓은 자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상화 매체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인간 정체성의 변이 과정을 다룬 이론으로 데니스 와스쿨 (Dennis Waskul)의 3P 모델이 대표적이다. 그는 가상 세계 관점에서 롤플레잉 게임을 분석하며 놀이하는 사람들의 정체성 전환을  페르소나, 플레이어, 퍼슨의 3단계로 분류했다.

와스쿨 3P 모델

① 페르소나 (Persona): 자아가 가상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과 인지 양식이다. 가상 세계 고유의 맥락, 관습, 상징이 존재하고 이것은 현실에서 통용되는 것들과 상이할 수 있다. 페르소나는 현실 자아와 동일성을 추구할 수도,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도 가능하다. 새로운 정체성 형성에는 자유로운 상상과 일탈 욕망, 억압에의 저항과 같은 힘이 작용한다.


 ② 플레이어(Player): 가상 세계의 페르소나를 제어하는 자아다. 플레이어는 현실과 닮은 듯, 다른 가상 세계의 규칙과 문화를 학습하는 존재로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가상 세계마다 고유한 규칙과 문화가 존재하고 그곳에 속한 페르소나의 역량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에 근거하여 전략적 자원 분배와 적합한 행동 선택을 완료해야 한다.


③ 퍼슨(Person): 평범한 현실을 살아가는 가상 세계 외부의 자아이다. 퍼슨은 허구와 상상이 반영된 가상 자아와 현실 자아의 경계가 뒤섞여 나타나는 일상의 혼란을 경계한다. 페르소나를 원격 제어하는 몰입 상황에도 플레이어는 자신의 현실 자아와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이중 자아 경험을 통해 플레이어는 가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과 역설을 체감하게 된다.  


SNS 사용자는 플레이어로서 자신의 현실 자아인 퍼슨과 가상 사회에 속한 페르소나 사이의 거리를 조정한다. 퍼슨과 플레이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가상과 현실의 유사도는 높아져 페르소나의 표현과 행동은 현실 자아로서의 선택들과 더 많이 일치된 모습을 보인다. 퍼슨과 플레이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페르소나가 속한 세계에 대한 현실의 구속력은 약화된다.     


플레이어와 퍼슨의 거리가 단축되면 페르소나와 퍼슨의 유사도가 높아진다


  

플레이어와 퍼슨의 거리가 멀어지면 페르소나와 퍼슨의 유사도가 낮아진다





서사적 정체성

SNS 사용자는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공유하며 표현 놀이에 참여한다.

이러한 진입 방식에 의해 SNS의 표현 대상과 정체성은 주인공에게 전제된 지위와 능력에 따라 극적 역할이 변하는 서사 게임의 특징을 취하게 된다. 이때 SNS 사용자의 서사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 구조와 주제 선택 기준은 문예 이론가 노스롭 프라이(Northrop Frye)의 다섯 가지 서사 양식 분류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① 신화: 주인공이 능력적, 환경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전능하고 차이를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면 주인공은 커뮤니티 내의 신적 존재로서 역할하게 된다.


② 로망스: 주인공의 우월성이 다른 이들에 비해 뛰어나지만, 극복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 아닌 정도 차이라면 커뮤니티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영웅적 인물이다.


③상위 모방: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뛰어나지만, 타고난 환경이나 기대하는 수준보다 뛰어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


④ 하위 모방: 주인공의 힘과 지성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도 자신의 타고난 환경 조건에 비해서도 뛰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⑤ 아이러니: 주인공의 힘과 지성, 처한 환경 모두 보통 사람들에 미치지 못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표현은 측은함, 부조리함, 우스갯소리처럼 전달된다.


노스럽 프라이, 문학 비평에서의 서사 양식 분류


서구문학은 신화에서 아이러니 양식으로 꾸준히 중심축을 이동해 왔다.

<페이스북>, <트위터>가 보여주는 현재 SNS의 흐름도 이와 마찬가지로 범접 못할 신화나 탁월한 영웅 세계를 상정하지 않고 현실 맥락을 수용하며 능력의 정도 차가 있는 사람들 간의 사건과 감정을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현실적 이야기와 현실 자아가 표현되는 대다수 SNS에서는 상위 모방, 하위 모방, 아이러니 양식의 서사적 정체성이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지배적인 SNS에서 신화와 로망스가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특정한 배경 서사를 설정하여 현실과 다른 환상 세계를 구현하는 SNS의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소위 캐릭터 커뮤니티 계열 SNS에서는 커뮤니티 세계관이나  주요 인물과 사건을 디자이너가 미리 정하고, 사용자는 큰 이야기 속에서 적합한 역할을 맡을 자신의 정체성을 그에 맞춰 결정한다.


환상성과 일탈성이 강화된 SNS는 현실과 유사도가 높은 주류 커뮤니티 대비, 현실 전복적 수준의 자유로운 서사 양식 선택이 가능해진다. SNS에서 배경 서사가 전제하는 사회문화적, 윤리적 가치관은 개별 인물의 정체성 구성과 이후 선택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체성 놀이의 사회적 유형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n)은 게임으로부터 한 사람을 개인에서 사회적 존재로 확장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견했다. 현대인의 정체성 놀이터인 SNS가 평범한 개인을 표현하는 잉여 소통의 장에서, 사회적 정체성이 교류하고 충돌하는 거대 담론의 장으로 급변할 수 있는 것은 일찍이 그가 포착한 게임의 본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마뉴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서 사회적 차원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모든 정체성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구성된 것이라 주장했다. 정체성은 자아 구성과 개별화, 즉 다른 사람과의 구별을 함께 만들어 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의미와 기능을 모두 조작한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발생하는 플레이어의 선택 행위는 결과보다도 놀이 목적에 맞게 의도된 경험 구성 과정을 반복하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SNS에서 정체성 놀이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사회적 자아를 전제로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개별 정체성의 구성 차이는 사회적 차원의 상징을 얼마나 자신과 일치시키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카스텔은 정체성 구성 유형을 정당성, 저항성, 반영성 차원에서 특징적으로 구분하였다. 이것은 정체성 놀이꾼으로서 SNS 사용자들의 표현 기준과 방향 파악에 도움을 준다. 이를 SNS 정체성 놀이 사회적 유형으로 아래와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SNS에서 한 사람이 정체성 놀이에 참여할 때는 이 중 하나만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표현 상황에 따라 여러 유형이 복합 작용하고, 사실상 매회의 표현 행위마다 사용자는 다른 정체성 놀이 유형을 선택할 수 있음을 유념하자.

 

① 정당화 놀이: 이 놀이에서 SNS 사용자는 자기 정체성의 합리성을 현실 사회의 지배적 제도와 질서에 맞추어 판단한다. 사회적 권위와 관습의 힘을 빌려 자기 정체성의 영향 범위를 확대하고 지지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놀이의 목적이 된다.


② 저항의 놀이: 기존 지배 논리와 당연시되던 관습에 반대하는 저항과 생존 원리 제시가 놀이의 목적이다. 이때 SNS 사용자는 지금까지 사회문화적 기준에서 폄하되거나 주목받지 못했던 낯설고 때로 거북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나게 만든다.  


③ 반영적 놀이: SNS 사용자들은 모두 그들에게 주어진 문화적 재료와 표현 기능에 기반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재정의 하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이 놀이의 핵심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반영한 사용자 정체성이 새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반영적 특성은 정체성 놀이로서 모든 SNS가 지닌 공통점이기도 하다. SNS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어떤 목표 상태에 도달하면 최종 결론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픈 월드의 이야기처럼 종결 없이 계속된다. SNS 사용자 정체성은 사회문화적 변화를 반영하는 불확실성과 유동성으로 말미암아 놀이의 도전적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병주. (2012). 소셜 미디어 마케팅에 반영된 놀이문화의 속성에 관한 연구. ≪조형미디어학≫, 15(4), 11-18.

남정숙. (2015). 영상의 세기에 태어난 신인류, 덕후의 창작문화-자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CONTENTS PLUS≫, 13(4), 37-59.

윤혜영 · 김정연. (2015). MMORPG의 서사 양식 전환에 따른 사용자 정체성 연구< 블레이드 앤 소울> 과< 다크폴>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15(1), 45-54.

Castells, M. (1997). The Power of Indentity. 『정체성 권력』. 정병순 옮김(2009). 한울.

Frye, N. (1957). Anatomy of Criticism.『비평의 해부』. 임철규 옮김(2000). 한길사.

Waskul, D., & Lust, M. (2004). Role‐Playing and Playing Roles: The Person, Player, and Persona in Fantasy Role‐Playing. Symbolic Interaction, 27(3), 333-356.

Waskul, D. D. (2006). The role-playing game and the game of role-playing. Gaming as Culture: Essays on reality, identity and experience in fantasy games,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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