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와 연진.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워하다
처음엔 시리아, 난민 두 개의 키워드에 대한 관심 정도였다.
올 봄만 해도 최근 두어 달 사이만큼 세간의 눈길을 끄는 현안이 아니었을 뿐더러 박사논문 쓸 때 우연한 기회로
난민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해 혼자서 야금야금 궁리하닥가 "시리아, 우리를 깨우는 소리" 모임에 참석하면서
되거나 말거나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하겠습니다" 하고 발설한 것이 단초가 되었던 일이다.
사실,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던 자리에서 조차 내가 이걸 진짜 하려나... 하는 의구심이 더 컸었는데 " 그래도 뭐 곧 방학이 오니까 그때 뭐라도 할 수는 있겠지... " 하는 예의 교수가 방학을 앞두었을 때 하게 되는 호기로운 생각이 더 컸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옳겠다.
그랬던 플레이 시리아 프로젝트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플레이 시리아는 콘진 일정 기준으로 프로젝트가 중반을 넘어서가고 있다.
내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콘진의 프로그램은 운영 방식이나, 참가자를 대하는 태도, 내실보다 거죽의 화려함을 중시하는 커뮤니케이션 습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적지 않다. 물론, 좋은 말은 아니다.
그래도 플레이 시리아에 속도를 붙여주고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후한 가산점을 주어야 한다.
화려한 포스터에 쓰인 큰 지원금에 혹하여 이게 웬일이라나 싶어 불나방 마냥 친구들을 모으고 도움을 청해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오늘까지도 나는, 이런저런 자료들이나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모르니까. (정말 이번 방학은 제대로 쉰 날이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우리 팀은 지금 이야기의 주인공과 핵심 구조를 만들고 있다.
거의 한 달에 걸친 토론과 리서치를 통해 이야기의 중심인물들이 어렵사리 결정되었는데. 결론은...
한국 안산에 사는 중3 소녀 둘.
2013년 시리아에서 서울로 이주해 온 사라와 서울에서 안산으로 최근 이사 온 연진이가 그 인물이다.
그러니까, 안산의 중학교 상황으로 보자면 전학생인 연진이를 사라가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방인으로써 연진, 연진을 맞이하는 또 다른 소녀 사라.
인물을 정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처음에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으니까. 먼길...돌고돌아...
스토리 워크숍을 통해 헬프 시리아 압둘 와합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이어가면서, 팀 멤버들은 우리의 선입견이 여러 번 깨지는 경험을 하였다.
그를 통해 접하게 된 세세한 시리아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아랍, 구체적으로 시리아의 문화가 다양성과 개방성, 활기찬 소통에 근거한 오랜 역사적 바탕을 가지고 있고 그 영향 때문인지 시리아 사람들의 에피소드에서 박력이랄까, 에너지와 자부심이 넘치는 열린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이방인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어 환대하는 오랜 풍습이 있으며 친구를 사귄다고 하면 그의 가족들이 곧 나의 가족이라 여기고, 지역에 있어서도 온 마을 사람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끈적한 커뮤니티 문화가 작동하는 곳이 시리아였다.
사라와 연진. 이야기의 중심인물로서 두 소녀는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소심함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면서 적응하려는 긍정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익숙한 것이 지루해져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외부 조건 변화로 인해 안산에 오게 되었다.
사라에 대해 상상할 때,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 2015년 시리아에서 캐나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하난 탈라베의 가족사진이다.
사진 속 하난의 가족은 난민이라는 신분과 전쟁 중인 시리아 환경에도 불구하고 활짝 웃고 있다.
이들에게서 내가 읽은 것은 두려움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함께 있기 때문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지킬 수 있는 희망의 에너지와 자신에 대한 자부심, 사랑 같은 긍정적 에너지였다.
사진에서 오른쪽 두 번째, 십 대 소녀의 이름이 '사라(Sara)'이다.
우리 팀의 이야기는 실제 사라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들의 사진에서 느낀 에너지와 지금 다시 시작하더라도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의 건강함을 담아내고 싶다.
씩씩하고 밝은 사라가 한국에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눌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http://www.canadianmennonite.org/stories/syrian-refugees-sponsorship-story
사라와 연진이를 중학생으로 설정하게 된 것은 최근 국민 청원을 통해 알려진 '이란인 중학생의 난민 신청' 기사가 계기가 되었다. 소녀들의 나이를 몇 살로 결정할 것인가는 정답을 찾기 힘든 어려운 과정이었다.
처음 작업을 기획할 때는 참고했던 텍스트 형식이 어린이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Choose your own advanture 였기 때문에 어린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생각했었는데, 어린이에 대한 서사를 구상하는 것이 여러모로 조심스러웠다.
그에 더해 위험에 빠진 아동 보호 이상의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을뿐더러 이미 유사한 이야기들 ( 전쟁터에서 아동들의 무고한 죽음과 그들의 파괴된 삶)이 많이 나와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텍스트를 통한 새로운 관점 제시 의미를 구현할 수 있을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중학생들의 난민 재심사 청원이 기사화되었고, 이것은 우리나라 난민 문제에 관해 우리들이 접한 "우정의 서사" 로서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
기사를 꼼꼼히 리뷰하는 과정에서 난민 심사 신청을 한 중학교 3학년의 이란 출신 소년이 해당 학급의 반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저희 반 회장이기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위험해지니까 도와줄 방안을 찾았어요.
그렇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이란 소년은 학습의 반장이다.
사라의 설정에서 시리아 출신 사라가 위축되고 따돌림받고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소심하고 그림자 같은 삶을 살 꺼라는 편견을 통쾌하게 깨 주는. 아랍 출신 반장.
완전 쿨하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847061
국민 청원에 올라온 중3학생들의 글을 읽어 보았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03099
옳고 그름을 따지는 논리로나, 한 학교 한 학급에서 우정을 쌓아온 친구로서의 인간적 도리로나 틀린 말이 하나 없는 정연함이 있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보면 "애들은 몰라"라는 어른들 말씀은 얼마나 허망한가.
제 나라를 떠나고 싶었던 난민은 없다.
되돌아 가면 죽음의 위험에 처한다는 난민의 말을 못 믿을 근거도 없는데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한 반 친구가 죽음의 위험을 호소하는 이 상황을 "널 믿을 수 없다" "넌 난민 같지 않아 보인다"라는 말로 내칠 수 있을까.
저희 반에는 이란에서 온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7살에 한국으로 와 지금까지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우리 한국 사람과 별반 차이 없는
이란 국적의 아이입니다.
세상이 우리 글을 대신 써주는 기분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건대.
사라는 2013년에 한국에 왔다.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다.
한국과 자동차 무역 거래를 하던 아버지의 네트워크로 6년 전 아슬아슬하게 시리아를 빠져나와 한국 안산에
정착했다. 사라의 한국 살이도 어언 6년째에 접어든다. 10살에 한국으로 와서 16살.
지금도 여전히 황당하고 억울한 상황을 때때로 겪어야 하지만, 사라는 그것에 굴해 제 삶을 함부로 두거나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어 잡는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당당하다. 자신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시리아와 아랍 문화에 대해서. 사라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한국의 친구들을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다. 그들에게 제 상황과 특별한 문화를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다.
사라는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사라와 연진을 이어주는 첫 번째 매개다.
시리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방법으로 지금은 사진보다 그림이 좋은 선택이다.
미술반 동아리 활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협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지 않고, 많이 떠든다. ^^
http://eoram.ms.kr/board.read?mcode=1214&id=15634
그림에는 말이 필요 없다.
안산의 학교로 전학 온 연진이는 그림을 좋아하고, 종종 제 마음과 사연을 그림일기로 남기는 취미가 있다.
둘의 첫 만남은 미술반에서 시작된다.
예상했겠지만 미술반 반장은 시리아 출신 사라.
연진이가 새로운 학교에서 미술반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설정.
사라와 연진의 두 번째 매개는 "쨈"이다.
연진이 부모님은 안산에서 작은 식당을 시작하셨다. 두 분 모두 바쁘지만, 우리는 연진이가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라는 그래서 그런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건강한 소녀로 그려내고 싶다.
연진이 부모님은 직업 상, 연진이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편하게 꺼내 먹으면서도 달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쨈 만들기를 가족 행사로 자주 해온 설정을 잡고 있다.
제철 과일이 열리는 때나, 부모님의 쉬는 날을 이용해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과일을 씻고 저으며 끓이고 다양한 과일잼을 완성한다. 그와 유사한 추억이 사라의 어린 시절, 시리아의 기억들과 겹쳐진다.
이제, 쨈이 없는 나라는 없다.
쨈은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다. 쨈은 어느 나라에서나 그나라 과일과 어울려 새로운 쨈을 만들어 낸다.
시리아든, 한국이든 빵과 비스킷이 있다면 달콤한 맛과 향의 쨈이 있게 마련이다.
연진이네 가족은 다양한 과일잼을 만들어 왔다. 그중 사라의 추억과 겹치는 살구 쨈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쨈이 "행복"을 상징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안다. 쨈은 행복이고 사랑이다. 사람은 소금과 물만으로 살 수가 없다. 소금과 물은 삶의 수단이겠지만 삶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행복에 있을 테니까.
실제로 터키와 시리아 지역의 살구는 유명하다.
유프라테스강이 만들어 준 비옥한 토양에서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햇살과 바람이 더해져
달콤하고 과즙 풍부한 살구가 열매를 맺는다.
사라에게는 살구나무, 살구, 살구꽃이 지천인 제 고향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그 추억 속으로 연진이가 들어온다. 두 소녀의 우정은 급작스럽게 불이 붙는 것 같은 부싯돌을 닮았다.
탁탁탁.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소녀들이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짓는 경험이 우리 이야기 속에서 태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라와 연진이를 상상하기 위해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
헬프 시리아 와합 사무국장이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정보와 영감을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만날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지만, 기록할 때마다 그 고마움을 남기고 싶어 진다.
압둘이 우리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의 눈은 빛난다.
특히, 시리아의 문화와 역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를 우리만 보기 아까울 정도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계기로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게임북처럼, 우리가 하는 선택들이 우리의 다음 장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Choose your own adventure 최초의 작가 에드워드 패커드는 결국 우리의 삶은 선택이 이어지는
끝을 정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닮았다고 말하였다.
결과물로써 어떤 작품이 어떻게 나올는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Product가 Production을 포함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과 지금의 나는 같지 않다.
내일은 새로운 멤버 이정남 님이 합류하는 스토리 워크숍이 진행된다.
사라와 연진이 주인공인 플롯 3개를 엮어 드디어 초벌의 이야기 구조가 완성되었는데, 그것을 함께 살펴보면서 다듬고 부족한 부분들을 점검할 것이다.
내일의 워크숍이 마무리되면 또 어떤 변화가 생길까.
걱정보다 기대가 큰 걸 보니, 우리는 지금 잘 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