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타래를 풀고, 잇다
2018년 8월 21일 프로젝트 다이어리
한동안 소식이 뜸했습니다. 엄청난 더위였죠.
플레이 시리아팀은 무더위 속에서도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먼저, 이야기 얼개들은 점차 구체화되고 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특징이 선명해지니 글을 쓰는 시간도 더 즐겁고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의 작업이 주요한 키워드 사이에서 그네 줄을 잇는 것 같았다면 이젠 그네를 함께 타는 기분이랄까요.
이야기는 덩어리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처음엔 30개 정도의 스토리 박스를 생각하며 프로젝트를 준비했는데 공부 하다 보니 서사를 위해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아이디어도 늘어나더군요.
TWINE은 스토리 맵의 통계를 제공하는데,
오늘 버전으로 살펴보니 64,247 Characters,
14,245 Words, 110 Passages, 146 Links의
대작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 마이 갓.
어느 순간부터 내가 글을 쓴다는 생각보다
주인공인 연진이와 사라, 그리고 미라와 정연이, 샤이마 삼촌, 와합 오빠가 글에 들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바흐친이 이야기한 캐릭터 존이 구축되면 작가라도 인물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네요.
등장인물의 면모를 정하고, 그들이 이야기 속에서 맡은 역할을 정의하는 과정은 흥미로운 스토리 워크숍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안산으로 전학 온 소녀, 이연진인데.
이 소녀의 이름은 플레이 시리아 팀원들의 이름으로부터
한 글자씩 가져온 것이에요.
이융희, 권보연, 오영진, 허효진. ^^
인물에게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의 이름이 어떻게, 왜, 언제 지어졌는지 기억할 수 있다는 것도 작가와 디자이너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겠죠.
연진이에 대한 설정은 처음엔 힘겹고 외로운 설정이었다가
리서치와 워크숍을 반복하면서 조금 망설이는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편견 없고 당돌하고 그리고 금방 사랑에 빠지는 악성 곱슬머리의 밝은 소녀로 수정되었습니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사로, 사건으로 접한 청소년들은 우중충하거나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혀 남을 미워하는 감정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써버리는 못난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세계 시민으로서 생명을 존중하고, 친구를 그저 친구로 대하고, 그들이 위험하다는 말을, 그들에게 있었던 빛나는 순간을, 그들의 자부심을 믿고 존중하고 싶어 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편견은 편견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성 가운데서 발생할 수 있는 좋고 나쁜 사건들이 우리 곁에도, 난민들에게도, 시리아에도 발생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친구들이었죠.
우리는 많은 토론을 진행하며, 시리아 사람들에게 감정적 낙폭을 발생시키는 것이 무엇 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시리아에 지금 아는 것 보다도 더 그들의 과거에 대해, 사실상 그들의 평범했던 지난날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https://petapixel.com/2016/08/02/26-photos-show-war-changed-syria/
우리는 시리아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인데, 현재 상태만으로 시리아에 대해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시리아 사람들에게 정말 깊은 슬픔과 절망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화려하고 유서 깊은 유프라테스 문명과 더불어 여유롭고 안정된 생활을 하던 국가 중 하나였는데,
그들에게 이제는 내전으로 끝장난 미래가 없는 나라라는 세상의 서늘한 시선이 폭격처럼 느껴지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플레이 시리아는 이야기 곳곳에 시리아 사람들의 문화적 전통과 원형을 담아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플레이 시리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결정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은 와합 사무국장의 힘입니다.
그는 한국에 살고 있는 시리아 사람들이,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시리아에서의 아름다운 추억과 문화적 자부심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친구와 이웃에 대한 개념, 파티를 즐기는 방법, 음식들, 관혼상제 같은 인류 공통의 절차에 대해서 시리아는 어떤 문화적 태도를 취하는지 궁금했고, 와합 입장에선 다른 인터뷰에서는 별로 취급되지 않을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서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했습니다.
시리아 결혼식은 가장 화려하고 신나는 파티입니다.
무려 일주일간 파티가 계속되죠. 신나는 음악과 춤, 맛있는 음식들이 온 마을을 풍요롭게 합니다.
누군가 결혼을 한다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도 그때만큼은 다툼을 멈추고 신혼 부분의 새 출발을 마냥 축복해 주어야만 합니다.
결혼식에 청첩장이 있고 초대받은 사람만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스타일입니다.
시리아는 친한 사람이라면 아무런 초대 없이 당연히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초대를 한다는 것은 초대를 받지 않으면 오지 않을 정도의 안 친한 사람들에게나 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결혼식 음악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해 와합은...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음악을 트는데, 특별한 음악이 따로 있나요.
시리아 음악이나 아랍의 음악만 듣는 게 아니에요.
세계 모든 나라의 음악이 다 나오죠!
그러네요. 질문이 촌스러웠어요.
동영상 검색을 통해 시리아 결혼식을 몇 개 살펴보았습니다.
신나게 놀더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awmC7CGmHbk
https://www.youtube.com/watch?v=y_xUJnydN80
우리는 쭈뼛거리며 사라의 초대에 응한 연진이가 이런 흥겨운 상황에 (비록 집은 좁을 지라도!) 어우러져 즐겁게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음식은 문화의 정수입니다.
그 나라의 기후와 자연,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죠.
우리는 디저트와 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생존을 위한 음식은 아니지만 삶을 위한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It is not for survival but for life
시리아 사람들은 커피와 홍차를 즐겨 마십니다. 우리도 알고 있는 살구지만 시리아와 터키 인근 지역에서는 더 흔하게 발견되고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과일이라고 해요.
우리는 시리아 스타일의 홈메이드 요리 방식에 대해 리서치하고 있습니다.
쨈이란 어느 나라라 대게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시리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찾게 된다면 아주 흥미로운 소재와 주제가 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터키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허효진 작가로부터 흥미로운 제보를 들었는데, 그곳에서 쨈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준 이가 쨈을 완성하기 전 반드시 햇볕에 쨈을 내어 놓고 식히며 빛을 쏘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널찍한 플레이트에 과육이 살아있는 조림 상태의 쨈을 펼쳐두고 그것의 단맛이 무르익고 불 핀요 한 수분을 건조하는 방식이라는 거죠.
http://jasmineroadtrip.blogspot.com/2014/06/21-under-sun-home-made-apricot-jam.html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달콤하네요.
이렇게 만들어진 쨈을 빵이나 비스킷에 발라 먹는데 어떻게 행복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특별한 조리법을 이야기 속에 담아 보기로 했습니다.
살구라는 과일은 고급 짐으로 승부하는 계열은 아니죠.
그러나 달콤함과 더불어 부르러 언 과육, 향긋한 향, 그래서 아쉽지만 짧은 계절 동안에만 먹을 수 있는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졌습니다.
중동의 정서를 상징하는 중요한 과일 중 하나이며,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가장 달콤한 살구가 재배됩니다.
단지 음식, 과일로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아랍지역에는
"You can have apricots tomorrw'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살구라는 과일의 특성상, 완전히 익지 않으면 떫고 거친 맛을 내는데 그것이 완전히 익는 날 (내일!)
그것의 가장 사랑스러운 맛을 낸다는 뜻이지요.
그것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말이고, 희망찬 그때는 반드시 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An unpexpected bounty of apricots means trying to find something, anything, to do with them. Which is difficult when they spoil practically overnight, and I have little in the way of baking prowess.
There is an Arabic proverb that almost perfectly describes this frustrating situation: "Bukra fil mish-mish", meaning "[you can have] apricots tomorrow". The logic is that apricots are only delicious right after picking as they become grainy and mushy by the next day. It's basically a nice way of saying "it's impossible, so let it go". As we all know, nothing good is ever an exact science. Although, if it were, there would be less excess, less waste and less opportunity to marvel at unexpected catastrophes.
어쩌면, 지금 시리아는 내일이 오기 전, 오늘의 살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일이 오면, 그들은 풍성한 햇살을 받고 자라난 진정한 살구 맛을 알고 향기와 과즙, 과육을 우리들과 기꺼이
나눌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티프를 하나하나 이야기 속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기사와 블로그를 검색하면서 우리가 시리아에 더 가까워져 감을 느낍니다.
당신이 이야기한 삶만이, 진정한 당신의 삶이다.
그 말의 의미도 이제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더 바삐 움직여서 9월에는 플레이 시리아의 작품 프로토타입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아참! 중요한 소식!
플레이 시리아팀에서 개발 자문을 맡아줄 이정남 선생님이 새로 합류했습니다.
TWINE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을 HTML 수준에서 구현한다고 해도 개발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작품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인디 게임 개발자로 활동하시면서 틈틈이 우리 팀의 개발을 도와 주실 거예요.
최근에 작품 하나를 딱 마치셨기 때문에 시간을 나눌 수 있는 행운을 제가 잡았습니다.
그럼, 9월 8일
시리아, 우리를 깨우는 소리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