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아래서> 데모데이를 향하여
#프로젝트 다이어리 #2018년 9월 18일 수요일
프로젝트 다이어리를 살펴보니,
첫 번째 글을 쓴 날이 7월 1일.
오늘, 이 글을 시점으로부터 두 달 하고도 열 아흐레 전이었네요.
그때 던진 출사표는 어쩐지 호기롭기도 하고, 어쩐지 자신 없기도 하고 오묘합니다.
친구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혼자 감당하기 어렵고, 그래서 많은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함을 명시적으로 써 놓은 것도 새삼스럽게 느껴지네요.
맞아요. 그건 정확한 예측이었습니다.
콘진에서의 첫 모임 이후 12주 만에, '놀이, 이토록 창의 로운, IMAGINE, PLAY'에 참여한 모든 팀들이 마지막 발표회 겸 전시를 위해 모였습니다.
작품 마감하랴, 전시 준비하랴, 발표 준비하랴 챙길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일단 지상 과제는 작품 마감인 만큼 플레이 테스트와 미진한 부분의 개발, 삽화 작업이 18일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잘못된 부분들이 개선되었고 그림도 한 장 한 장 추가되었습니다.
뒤늦게 조금 더 일찍 준비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그것은 이번 프로토타입 버전 1.0의 몫이 아닌 걸로, 그다음 버전을 위한 것으로 남겨 두기로 하고 일단 마감에 집중했어요.
사소하게 느껴지는 오탈자, 줄간, 자간, 링크와 링크 사이의 간격들도 TWINE에서 볼 때랑 웹에 올라가 작동할 때랑 느낌도 다르고 작동의 편의성도 달라서 수차례 재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플레이 테스트는 총 5차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개발을 진행하며 동시에 플레이 테스트가 이루어져서 더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첫 번째 플레이 테스트에서는 웹과 모바일에서 구동하는 텍스트가 너무 길어서 거의 모든 페이지에 스크롤이 발생하는 것이 UI 이슈로 지적되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개발에 혼란을 줄까 우려되어 일단 반영을 미루었었습니다.
그런데 이정남 개발자와 이야기 나누면서, TWINE Passage를 분할하는 것이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능한 스크롤 없는 리딩이 가능하도록 페이지당 글 수를 잘라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플레이 테스트를 할 때마다 Passage가 늘어난 것은 그 때문이에요.
마지막 버전의 TWINE 통계를 보니, 162개 Passage/ 204개 Link로 늘었네요.
TWINE을 좀 더 미리 학습할 시간만 있었다면, 같은 기간 작업을 했어도 훨씬 완성도 높은 표현을 해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큽니다. 직접 작품 하나를 끝내는 기간만큼 몰두하여 써보니 쓰임이 좋고 편리함이 높은 훌륭한 툴이었고, 특히 인터랙티브 픽션 작가에게는 아주 효과적인 도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최종의 제작 단계가 그렇지만, 사소한 일 따위는 없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이는 많은 일들이 상당한 내공과 숙련을 요하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면 막막하고 좌절감이 들죠.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사실, 제 경험으로는 책임감보다 팀워크인 것 같아요.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자는 마음이 먼저고 그 일을 맡은 사람이 해결을 보아야 한다는 강박은 그다음이죠. 플레이 시리아팀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에 대해 능숙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의 역할을 지원하고 함께 학습하려는 의욕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시리아에 대해서 리서치를 시작할 때도, 글의 구조와 그림의 콘셉트를 잡을 때도 그랬고 마지막 개발을 마감할 때도 그런 팀워크가 작동할 수 있었죠.
<햇살 아래서>에는 서사의 갈래가 분기되는 것 이외에는 이미지와 배경 음악 플레이 정도가 기능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것이 CYOA 류의 게임북이 갖는 글에 대한 집중성을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움지이는 영상과 퍼포먼스에 익숙한 콘텐츠 시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적이고 고요한 느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죠.
그 가운데 페이스북 메신저나 카카오톡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어떤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 장면이 엄청나게 느껴지는 것은 TWINE에서 이런 움직임을 처음 구현해 보기 때문입니다. TWINE1.0에서 유사한 작업을 해낸 개발자의 소스를 구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2.0 버전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html에서 1초씩 시간차를 두고 글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타협적 프로그램을 선택했습니다.
아... 이 장면... 많은 공이 들어갔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마지막에 이 장면을 완성할 때는 무려 이정남 개발자가 직접 샤이마와 와합의 프로필 이미지를 그렸다는 사실은 우리만 아는 비밀로 공개합니다.
멋지죠? 야간작업 중에 이 프로필들을 손으로 그려서 저에게 보내준 이정남 개발자의 따뜻한 에너지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 숨 쉬는 소녀들
텍스트 중심 게임북이지만, 그만큼 캐릭터의 생명력과 매력이 중요합니다. 제가 글을 쓸 때 그 맛을 다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소녀들의 행동과 감정을 통해 허효진 작가가 잡아낸 캐릭터는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 대비 충분히 멋지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처음, 컨셉을 잡을 때 참고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어린아이들이 지닌 에너지도 있었고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청와대 청원 같은, 에 등장한 한국 중학생들의 인류에 와 세계 시민 정신도 그들의 캐릭터에 반영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연진입니다. 이연진.
연진이는 중학교 3학년이고, 서울에서 전학을 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한 명씩은 꼭 있었던 매직 파마도 고데기도 손쓸 수 없는 막강한 꼽슬 머리의 소유자죠.
고집도 세고 자아도 강하지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궁금한 것은 궁금해하는 솔직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전학을 오게 된 상황이 마뜩치는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을 이해합니다. 연진이의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이신데, 외동딸인 연진이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지만 해마다 가족 행사로 제철 과일로 쨈을 만드는 일은 거르지 않으셨죠. 바쁘신 가운데 연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충만한, 우리 주변의 엄마 아빠세요. 연진이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만, 우리가 그런 것처럼, 때로 짜증을 내기도 하고 불만을 늘어놓기도 하죠. 하지만 연진이는 잘 압니다. 엄마 아빠의 도움 없이도 혼자 할 일은 혼자 해내야 한다는 것을요.
이 아이가 사라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사라의 성은 나오지 않아요.
5년 전 아빠를 따라 가족과 함께 한국에 오게 되었죠. 그때, 시리아에서 단짝 친구로 지냈던 얄다와 눈물의 이별을 했습니다. 사라는 건강하고 자신감 있고 씩씩합니다. 사라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시리아 문화를 사랑합니다. 전쟁을 피해 먼 곳으로 떠나와 지금 한국, 안산에서 소수 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미술반 반장으로 친구들을 리드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전한 온 연진에게 사라는 이방인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 그들을 이방인으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자세를 몸소 보여주죠. 사라는 연진에게 손을 내밉니다. 톨레랑스. 관용.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복잡하고 어려운 셈법이 아니라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걸. 사라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