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아래서 1.5
기본적인 얼개를 다시 손보고, 서사 경로의 오류도 리서치를 통해 수습했지만 작업은 아직 미로를 헤매는 중이었습니다. 디지털 파트와 출판 파트의 협업이 필요한 시점에 스크립트를 꼼꼼히 확인하고 합을 맞추는 것은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주요한 대사를 십 대 소녀가 되어 직접 읽어보며, 구어적이지 않은 스크립트를 수정하고 손보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이 없네요. 30대의 끝자락과 세계 어느 나라 나이로 세어도 45세를 넘어선 두 작가가 서로의 동심을 자극하며 대사를 쓰고 있으니까요.
대사, 인물의 언어.
언어는 인물의 인격을 담는 그릇이며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언어는 곧 캐릭터를 드러낸다 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이론가면서도 얄다, 사라, 연진, 정연 등 소녀들의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데는 한참 부족함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네요.
<햇살 아래서 2.0>을 하게 된다면, 그땐 소녀들의 대사를 진짜 중학생들과 같이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다듬고 고치고 다시 쓰고 싶습니다. 미안하다 소녀들아!!!!
작업을 하면서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스크립트를 리스트업 해서 경로를 확인하고 대사를 점검하는 협업은 시간이 참 많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1.0 작업을 통해 사실상 완성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고란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번에 깨닫게 되었죠.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퇴고가 다 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햇살 아래서 2.0> 이 꼭 필요합니다.
<햇살 아래서 1.5>에서 이제 가장 중요한,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집중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삽화를 추가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미지보다 텍스트가 중심이 된 게임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기획 의도였지만 그림이 들어간 페이지와 그렇지 않은 페이지의 매력도는 차이가 크더군요. 섞이면 결국 이런가 싶어서, 다음번엔 정말 그림이 단 한 장도 들어가지 않은 게임북을 만들어야겠다는 엉뚱한 야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65개의 Passage로 페이지까지 늘어난 이 상황에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작업할 수 있는 물리적 가능성을 고려할 때, 새로 추가되는 그림은 20개 아이템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한 장에 여러 개의 일러스트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페이지 당 그림이 세세히 추가되는 것을 불가능했죠.
<햇살 아래서 1.0> 작업 기록을 보며 1.5 버전을 해야 한다면 반드시 추가되어야 하는 삽화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작업 기록은 그런 의미로 급한 상황에 한줄기 빛이 되더군요.
1.0 에서 삽화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햇살 아래서>의 하이라이트인 시리아 특제 살구 쨈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 설명 페이지였습니다. 사라의 어머니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귀엽고 임팩트 있는 How to 가 표현된 그림이 아쉬웠죠. 살구 쨈 레시피를 설명하는 Passage에서만 7장의 그림 추가가 결정되었습니다.
1.0 버전에서는 일러스트 그림 이외에도 사진 이미지들이 활용되었습니다.
시리아 소재의 한 레스토랑(Olympia Restourant)이 보유한 전쟁 전후의 알레포 사진 이미지가 요긴하게 사용되었는데, 출판을 고려하고 있는 1.5 버전에서는 그 사진 사용에 대한 허가를 얻지 못했습니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우리 작품의 취지와 사용 허가를 원한다는 영문 메시지를 보냈지만, 언어적인 문제 때문인지 레스토랑 담당자에게서는 회신이 오지 않았거든요.
https://petapixel.com/2016/08/02/26-photos-show-war-changed-syria/
그래서 아쉽지만, 이 부분의 사진 이미지도 사진을 보고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들께서 다시 그리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또 결혼식장에서 사라와 연진이 맞본 시리아 음식 3종 세트도 비상업적 용도로 허가된 사진 이미지였는데, 이 부분도 출판을 고려하여 사진 이미지를 쓰지 않고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정리해보면, 내용의 풍성함을 위해 추가된 삽화는 1) 살구 쨈 레시피 부분, 2) 결혼식장에서 얄다와 샤이마 삼촌의 사진을 처음 보는 도입부, 3) 사라와 얄다의 어린 시절 평화로운 시리아에서의 추억 부분 정도가 되었고 나머지는 출판을 고려한 저작권 침해를 예방하는 작업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작권은 소중한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