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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경고등

감히 공감하고 파고들지 말 것

by 보현
나는 춤을 추고 또 추었다.
당신은 아름다워요. 당신은 강인해요. 당신의 움직임이 나에게 영감을 줘요. (…)
내가 더는 아름답지도 강인하지도 않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이따금 궁금했지만 그 결말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질문도 그만두었다. (김초엽, 『므레모사』, 현대문학, 2021, p.89-90.)


소설을 읽고 마치 자해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은 오랜만이다. 김초엽을 무척 사랑하고, 아마 이 소설도 무척 사랑하게 될 터이지만, 우울증 환자에게는 독약 같은 책이었다. 잘 견뎌 왔다고 생각했건만, 불과 몇 주 사이에 조금씩 닳아 가며 지쳐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삶을 힘에 부쳐하는 내가 툭 건드리면 픽 쓰러져 죽는 아주 연약하고 하등한 생물 같아서 좀 웃음이 난다. 사실 냉정한 이성으로 따져 보면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기가 싫을 뿐이다. 삶을 원했다고,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고,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고 되뇌는 유안이 곧 내가 됐다. 이런 식의 공감과 이해는 무척 유해하다고 내 머릿속의 경고등이 외치고 있다. 그러므로 책을 덮는 순간 잊어야 할텐데, 아주 오래오래 곱씹게 될 것 같다. 약을 다시 늘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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