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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2022년 2월 5일

by 보현

갑작스러운 이동 소식에 넋이 나가서 목요일에는 뒤통수가 당길 정도로 울다가 친구들을 붙들고 푸념을 늘어놓다가 했다. 어제는 당면한 현실을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듯했는데,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정말 오늘은 하루 종일 침대에 쓰러져서 잠만 잤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다. 거의 백지상태나 마찬가지인 새 출입처 현안에 대해 공부한다는 계획은 어디론가 증발했다. 사실 식욕이 없어서 밥도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하루 한 번 먹는 약을 빼놓을 수는 없으니까 간신히 밥 먹고 약은 챙겨 먹었다. 부엌 개수대와 책상 위는 또 난장판이 됐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잘할 것이다"라고. 그런 기대가 기쁘기보다는 마음을 괴롭게 한다. 기껍고 고마울 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양 어깨에 각각 1톤쯤 되는 돌덩이가 올라가서 나를 땅 밑으로 꺼지도록 짓누르는 것 같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일을 하는 나의 태도나 결과물 같은 게 마냥 개판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런데도 나의 능력,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펑펑 울면서 선배들한테 "기다려 달라"라고 말하긴 했는데, 실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일 잘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은데, 밑천이 언제 까발려질지 모르겠다는 공포가 더 크다.


언젠가 친구와 이런 대화를 했었다.


"언제는 오버도 좀 하고, 1을 해 놓고 5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인 양 굴어도 봤는데 너무 괴롭기만 하더라고. 성격이 이런 건 어쩔 수 없나 봐."

"성격상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손해를 보는 걸까?"

"이러니까 일을 잘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평가를 잘 받아 승승장구한다는 것이 그다지 좋게만 느껴지지가 않더라고.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우수하다는 게 아닌 이상 어떻게 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지 대강 보여서? 다른 이야기지만 우린 스스로에게 좀 박한 편이라 이런 평가 방식에 더 취약한 것 같아."


1만큼의 일을 하더라도 10만큼 포장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숱한데 나는 그게 왜 잘 안 될까.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나서서 까부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고, 성격은 차분하고 조용한 게 잘못인가. 그런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해도 남들이 몰라 주니까 억지로라도 번식기를 맞은 수컷 공작새처럼 꼬리깃을 열심히 부풀려야 하는 건가. 그런 주제에 나와 비슷한 주변 사람들, 그러니까 스스로를 늘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너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라고 추켜 세워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늘 진심이었다. 그런 나를 두고 친구는 "너는 평생 내 자존감 지킴이였다"라고 말해 주었다. 고마우면서도 쓴웃음이 났다. 남들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렇게 말했더니 친구는 "남은 적당히만 알고 나 자신은 잘 알아서 그렇다"라는 명답을 내놓았다.


내 가치관에서 자살은 자유로운 선택이 절대 아니고, 그런 측면에서 타의로 일찍 죽거나 오랫동안 괴로워하며 사는 게 싫어서 많은 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지난 1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해왔는데, 당분간 꽤 괴로울 것 같다. 또 울면서 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완벽한 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나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재미있게만 하자"고 말한다. 그게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이라서 그렇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또 울음이 터질 것 같다. 무서워서 죽을 것 같다. 머리가 터질 때까지 바흐를 듣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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