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2일
아침 약의 용량을 두 배로 늘렸다. 아빌리파이 반 알은 한 알로, 에스시탈로프람 5㎎은 10㎎으로 각각 늘었다. 약값도 5000원 정도 더 나왔다. 이제 하산할 때가 됐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약을 늘리나 싶어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불안하고 초조할 때마다 오른손 엄지손톱 주변의 살갗을 뜯는 오래된 버릇이 출입처 조정 직후부터 자해 수준으로 심해졌기 때문이다. 뜯고 싶지 않은데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잡아 뜯고 있다. 때로는 오른손 검지나 중지로도 모자라 손톱 다듬는 도구를 쓰기도 한다.
손가락 상태는 사진보다 더 심하다. 온통 시뻘겋게 퉁퉁 부어서 딱지가 앉아 있다. 흉하기도 흉하고 아프기도 아픈데, 이대로 가다가는 엄지 전체의 피부를 홀랑 벗겨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무서워졌다.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혼날 것을 각오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손을 펴 보이면서 이실직고했다. 혼나지는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전에 없이 심각해졌다.
의사 선생님은 엉망이 된 손가락을 보자마자 약을 늘려야겠다고 말했다. 졸리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약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도 있기 때문에 반창고 같은 것을 사서 엄지를 전부 감아 놓으라는 조언도 함께 들었다. 진료를 마치고 곧장 약국으로 가서 거즈와 반창고와 연고를 샀다.
얼마 전 나를 우울증에 걸리게 한 프로젝트의 상여금이 들어왔는데, 계산해 보니 반 년여 간 상여금의 3분의 1 정도를 정신과 진료비에 썼다. 하산의 문턱에서 산 중턱 정도로 도로 기어 올라왔으니 상여금을 죄다 병원비에 쏟아붓게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므로 굳이 투덜거리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다만 수지 안 맞는 장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나를 너무 소진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