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6일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우리 의사 선생님은 사실 사석에서는 유쾌한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는 중이다. 오늘 진료에서도 의사 선생님을 웃기고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불안은 일에 익숙해지고 약을 늘리면서 "대체 왜 그렇게 펑펑 울었던 거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이 해소되었고, 심지어 부장과 팀장께 "저는 슬로 스타터이기 때문에 적응할 시간을 달라"는 말씀을 미리 드렸는데도 지나치게 잘해서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은 눈꼬리까지 깊게 접어 가면서 내내 크게 웃었다.
"너무 잘해서 문제라고요?"
"네, 큰일 났어요. 친구가 농담 삼아서 '우리 같은 호구는 이상한 걸 시켰을 때 너무 잘해 버리면 나중에 또 이상한 걸 시키니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라고 했는데 말이에요. 요행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친구가 그걸 보더니 '내가 너무 잘하지 말라고 그랬지!'라고 하더라고요."
"시키면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성격이라서 어쩔 수가 없네요."
그리고 수면의 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했다. 오후 11시쯤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2~3시쯤에는 한 번씩 깼다가 잠드는데, 이게 낮의 일상생활에 크게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조금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때쯤 잠 기운이 얕아지는 건 정상적이고, 다시 잠에 들 수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약은 지난 진료와 똑같이 받아 왔다. 손가락 뜯는 버릇만 의식적으로 좀 더 자제하면 괜찮을 것 같다. 아예 안 뜯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피가 나서 손톱 주변이 퉁퉁 붓도록 뜯는 지경까지는 아니니 나아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오늘을 비롯해 과거 진료에서 나눈 이야기까지 쭉 돌이켜 보니, 내 우울증의 심지에는 불안이 크게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천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최악으로 치닫는 경우는 별로 없고, 내가 일을 망쳐 버리는 경우도 별로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은 성격상 어쩔 수 없더라도 잘 달래서 가라앉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