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대가는 연봉 3% 인상

바라시는 대로 설렁설렁 살아 보겠습니다

by 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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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휴직 중 연봉협상을 해야 한다며 별안간 회사로 불려 가 3% 인상률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받아 들고 나니 전부 아무래도 좋아졌다. 아이스 브레이킹이랍시고 하는 말들도 짜증이 나고, 지금의 정신상태로는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꾸며내기도 힘에 부쳤고, 뭐라고 더 대꾸하기도 싫어서 그냥 사인만 한 뒤 곧장 연봉 계약서를 받아서 나왔다. 눈 돌아가는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봉 인상률이라니, 허탈감에 마른 웃음만 나왔다. 취재비를 뺀 본봉이 아주 작고 귀엽기 이를 데 없었다.


성과를 내서 인정을 받으려는, 혹은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 아래서 참 알뜰하게도 쥐어짜였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몸을 갈고 정신을 갈아서 어떻게든 성과를 낸 뒤 질병 휴직을 내고 드러눕고 만 지금, 대표와 국장은 내게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말라"는 흰소리나 해 댔다.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우리 엄마밖에 없다. 내가 얼마나 갑갑한 '모범생'의 삶을 살아왔는지 아는 사람은 이 지구에 단 둘뿐이다.


차도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나날을 보낸 뒤의 대가가 이 정도라면, 그냥 내가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내려놓고 살아도 무방할 것이다. 걸쭉한 콩국수와 달콤한 백도, 체리, 멜론을 곁들인 제법 긴 대화 후 그런 결론을 내렸다. 엄마가 바리바리 싸 준 과일을 들고 현관을 나서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다 X까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게." 엄마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걸고 내 팔을 탁 치면서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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