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를 남발하면 기사는 금방 낡는다

그래서 되도록 안 쓰고 싶다

by 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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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독자의 사이에는 데스크라는 다리가 있어서 기사가 순전히 나의 의지만을 반영한 결과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쓰지 않은 문장, 붙이지 않은 제목이 출고 과정에서 어느 순간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경우야 숱하다. 그래도 기사를 쓸 때 내 선에서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 일이 있다. 그것은 유행어나 인터넷 은어, 신조어 등을 기사에 불필요하게 많이 집어넣는 것이다. 안 그래도 소비 수명이 짧은 것이 기사인데, 그런 말이 많이 쓰인 기사는 암묵적인 유통기한보다도 더 이르게 낡아 버리기 때문이다.


말은 빨리 변한다. 1980~1990년대 저녁 방송 메인 뉴스에서 인터뷰를 하는 시민들의 말투는 2022년의 뉴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질적이기 짝이 없다. 유행어는 그보다 더 빨리 변한다. 'ㅋ'이나 '공주병'처럼 일상 곳곳에까지 자리를 잡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들을 제한다면, 다수의 시쳇말들은 마치 휘발성을 가진 것마냥 혜성처럼 반짝 등장했다가 곧 사라지곤 한다. 그러면서 어떤 개념이나 감정을 단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효용을 곧 잃는다. 달리 '당대에 유행하는 말'이 아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 축에 드는 인터넷 유저들이나 쓰는 어투로 여겨졌던 '~셈', '~삼'체는 어느새 사용자의 나잇대가 지긋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지표가 됐다. 내 주변만 보더라도 지시를 할 때 저런 말투를 쓰는 사람은 나이를 제법 자신 데스크나 차장급들밖에 없다. 유행어를 품은 문장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렇게 낡은 느낌을 주고 만다. 물론 유행어에는 한 시절의 분위기를 마치 크로키하듯 포착해 담을 수 있다는 효과도 존재하기는 하겠다. 다만 종사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그런 관찰자적이고 엄밀한 의도를 가지고 유행어를 기사에 담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별생각 없이, 그냥 많이들 쓰니까 넣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굳이 따지자면 내가 보수적인 언어 사용자 쪽에 들어간다는 것도 유행어를 지양하려는 이유 중의 하나다. 최근 들어 뉴스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집단이 특정 연령대에 한정됐다고들 하나, 기사를 작성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독자로 상정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오해하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고려하는 편이 낫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유행어와 은어 등은 썩 좋은 전달 수단이 아니다. 그 말이 생겨난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는 특정 집단이 아니고서야 맥락을 100% 이해하기란 어렵다. 기사를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 자신이 국어책처럼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말만 쏙쏙 골라 쓰는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유행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시대상을 기록해 놓으려는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대중적인 글쓰기'에서는 유행어를 지양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는 참 어렵다. 지금보다 나이를 먹어도 절대 쉬워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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