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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02. 2021

5개월만에 맞는 약을 찾다 (아마도)

2021년 10월 2일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약 봉투에 처방 약 이름을 적어 주지 않는다. 병명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때그때 증상을 묻고 답하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간단한 조언만 해 준다. 단지 유튜브 클립 몇 개를 보고 책 몇 권을 읽어서 주워들은 풍월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문가 앞에서 온갖 약 이름을 주워섬기며 아는 체를 하는 것은 스스로 좀 꼴사납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약을 바꿨을 때에는 대체 뭘 먹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져서, 약학정보원 홈페이지를 뒤져서 모든 약의 이름을 알아냈었다. 모양과 색깔, 새겨진 글씨와 그림 등을 입력해서 검색하면 기가 막히게 잘 찾아 준다. 전에 먹던 약은 그냥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바꾼 약은 조울증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아침 약을 바꾼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기분의 진폭이 극히 작아진 것을 보면 저 약이 내게 잘 맞았던 모양이다. 이제 새벽 한중간에 한 번씩 깨는 문제만 해결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저녁 약을 증량한 뒤로 수면의 질 자체는 조금 개선이 됐지만, 계속 자다가 깨는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면 아마 정신과적인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의사 선생님도 이 이상 약을 늘리면 몸이 축축 처질 수 있다며 증량에 회의적이었고, 나도 이 이상 약에 기대서 뭘 해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같은 약을 계속 먹기로 했다.


    대신 수면 환경을 이리저리 바꿔 보려고 한다. 내 방은 남동향 원룸이라 쉽게 더워지고, 번화가 주변에 있어서 소란스럽고, 본가처럼 통풍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환기를 쉽게 하기 어렵다. 가장 서늘한 아침나절에도 온도가 25도 아래로 내려가는 법이 없다. 아마도 이불이 좀 덥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약물치료의 효능을 느껴서 무척 고양됐을 때보다도 마음 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약물이 고장난 어딘가를 열심히 고쳐 주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쓰레기 버리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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