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로 선량하고 싶어요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살았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심지어 취재원들도 내가 착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손발이 배배 꼬여서 미칠 것 같다. '착하다'라는 말이 쓰이는 폭이 너무 넓기 때문에 황송하게도 나 같은 사람까지 그 범주 안에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착하지 않고 심약하단 말이다. 심약한 사람의 기질이 한국 사회에서 '착하다'라고 여겨지는 특징에 일부 부합할 뿐이다.
심약한 사람은 타인의 기분을 거스르기 싫어한다. 그보다는 무서워한다. 외부의 부정적인 자극에도 극히 민감하기 때문에 되도록 평온해 보이는 환경을 만들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불만이나 화는 속으로 삼키거나, 정말로 가깝다고 여기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소심하게 표출하는 데 그친다. 유해하거나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저 얌전하고 유순해 보이기 때문에 '착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면 내게 모욕을 준 사람이 했던 짓이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그의 사회적 평판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바란다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예시가 이렇게 구체적인 이유는 최근에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 조금 마음고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저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처럼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착하다'라는 형용사에는 무슨 쓸모가 있을지 가끔 생각한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착한 사람, 무해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선량한 사람이다. 타인에게 골고루 상냥하고, 불의나 곤란함을 맞닥뜨리면 큰 소리가 나더라도 참지 않고 맞서고, 스스로에게는 더욱 엄격하고, 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선량함과 심약함 사이에는 대한해협만큼의 거리가 있다. 헤엄쳐 가려면 갈 수도 있겠지만 좀 많이 힘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