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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Dec 05. 2022

밥 굶기는 이념이 무슨 소용이랴

언행일치는 어렵다

    어릴 적에 휴학하고 처음으로 했던 아르바이트가 모 프랜차이즈 빵집의 주말 마감반이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추측하건대 남편 쪽은 소싯적 학생운동이나 그 비슷한 활동을 했던 것 같았다. 내가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단박에 "절대 '조중동'에는 가지 말아라"라고 했던 걸 보면.


    사장은 정의롭고 싶어 했지만 언행일치는 제대로 안 되는 사람이었다. 세무사에게 일을 맡겨서 세금을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지를 자랑하곤 했다. 나는 석 달 동안 '수습'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다가 힘들어서 일을 관뒀다. 저녁도 못 먹고 여섯 시간을 서서 일하고 시재 맞추고 퇴근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 뒤에 나는 잠깐 일을 하다가 다시 회사를 뛰쳐나와 백수가 됐는데, 그때 처음 구한 아르바이트가 공교롭게도 또 빵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는 점만 빼면 그야말로 '꿀알바'였다. 일단 살이 찔까 걱정될 정도로 잘 먹고 다녔다. 여유가 있는 시간이면 실장님이 빵을 작게 구워서 주셨고, 사장님은 늘 점심을 만들어 주셨다. 받는 게 많으니 자연스럽게 그만큼 열심히 일을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까지 빵을 다 포장하고 나왔던 적도 있다. 훨씬 전에 일을 그만뒀던 아르바이트생도 사장님의 SOS 한 번이면 득달같이 달려왔다.


    말로만 정의가 어쩌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어쩌고 떠드는 사람보다 밥 제때 잘 먹이고 사람대접해 주는 쪽이 내 생각에는 훨씬 의롭다. 말이나 신념은 품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하지. 고용인의 최저시급도 안 맞춰 주는 주제에 정의를 논하는 건 퍽 우습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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