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기 전 자가진단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엄마는 장염에 걸렸고, 동생은 구내염이 생겨 입술이 퉁퉁 부어 터졌다. 앓지 않고 그 전처럼 일상생활을 해내던 것은 나뿐이었는데, 뒷정리가 조금 마무리된 다음에야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의사 선생님에게도 예상보다 상태가 괜찮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사실은 괜찮지 않았나 보다.
차라리 몸이 아팠으면 나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심각해지기 직전의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온통 진득진득한 진흙으로 된 늪에 누워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온몸이 늪에 둥둥 떠 있지만 곧 가라앉을 것만 같아 심장이 이따금씩 요동을 친다. 그런 감각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어느새 세계가 내 몸만한 크기로 축소돼서 나를 짓누른다. 갑갑함에 숨을 쉬기 어려울 때도 있다.
얼마 전 취재원과의 점심 약속에 갔을 때, 모든 대화가 내 몸에 반사돼 튕겨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말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반응도 늦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게 이 때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저 잠만 자고 싶었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지난해 봄·여름과 무섭도록 비슷한데, 빨리 낫고 싶다는 일념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내일 병원에 가려고 대휴를 냈다. 위에 적은 대로 진료실에서 이야기하려고 정리했다. 치료일기를 쓰는 것은 대체로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