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8일
줄퇴사가 이어지면서 구성원들이 술렁이던 어느 날, 일전에 내게 업무적으로 도움을 준 적 있던 선배가 갑자기 전화를 해 왔다. 우리 팀 퇴사자의 동향을 살피는 것과 동시에 퇴사 러시에 동요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후배의 마음을 다독이고자 하는 의도가 별로 숨겨지지도 않는 그런 통화였다. 조금 웃음이 나기는 했지만, 가끔 풍선을 바늘로 찌르듯 힘든 마음을 빼내야만 한다는 조언은 크게 도움이 됐다. 나처럼 우직하고 고지식한 데다 세상 모든 고난을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누가 참으라고 했어?" 같은 말은 야속하기는 해도 그렇게 틀릴 것도 없다. 그냥 성실하게만 사는 사람의 진가를 알아 주는 이들은, 경험상 잘 쳐 줘야 3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요즘은 선배의 조언을 서툴게나마 받아들여 생활 속에서 실천해 보려 노력 중이다. 오늘 있었던 일도 그와 같은 노력의 한 일환이었다. 최근 몇 개월여간의 정말 말도 안 되는 모종의 상황 속에서 인내심은 바닥이 나기 일쑤이고,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내 몸이 서너 개쯤 되는 것처럼 내려오는 지시를 받자마자 당장 휴대폰을 집어 들고 KTX 좌석을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참았다. 출장에서 복귀 중이라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숨을 고르면서 G선상의 아리아를 몇 번이고 반복재생해서 들었다.
그리고 용산역 앞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꺼내 무는 동시에 전화를 걸어서 "회사에서 저희한테 정말 너무하시는 것 아니에요?"라고 냅다 질렀다. 당장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후배에게는 차마 이런 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냥 참고 일을 한다며 꼴사납게 줄줄 울었다. 물론 나는 바보는 아니라서 누울 만한 자리에 대고 발을 뻗는다. 그간 상사와 쌓아 온 신뢰라든지, 그가 보여 온 인품이나 가치관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엉망이 된 머릿속에서도 엉성하게나마 계산을 한 뒤 저지른 짓이었다.
당황스러운 침묵과 얕은 한숨이 조금 이어지다가 못 하겠으면 하지 말라고 달래는 말이 돌아왔다. 우습게도 약해 보이는 건 또 죽기보다도 싫어서 갑자기 약이 올랐다. 전화를 끊자마자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자리를 깔았다. 하기 싫어도 할 일은 해야 해. 나는 어른이니까. 이런 말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악에 받쳐서 일을 했다. 기차 안에서 화가 머리 끝까지 찼을 때보다는 머리가 잘 돌아가서 꽤 수월하게 끝났고, 보고를 올리자마자 곧장 전화가 왔다. 그리고 미련한 나는 "굉장한 거야", "잘했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맥이 풀리듯이 기분이 나아졌다.
그래서 내게 상으로 맛있는 것을 준 다음 집에 돌아왔다. '내가 약까지 먹어 가면서 이 짓을 계속해야 돼?' 같은 자기연민에 잡아먹히지 않고 차라리 울면서 일을 한 사람은 그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