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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y 23. 2023

서울시 최고의 정책, 추천합니다

만 2년 차 우울증 재발 환자와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의 발안자나 담당 주무관, 팀장, 과장, 혹은 실·국장 등이 모니터링 중 내 글을 우연히라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제목에는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진심만을 담았다.


    심리상담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지인 한 명은 가장 힘들었던 일로 상담사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꼽았다. 하지만 나는 변죽을 울리는 말들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의 최소 상담회기는 4회, 최대 상담회기는 10회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활용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첫 상담을 받으러 가던 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늦은 오후의 노곤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죽을까?' 따위의 생각을 캐주얼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봄은 우울증 환자가 죽어나가는 계절이다.)


    의욕이 좀 지나쳐서, 나는 2회기까지 매 시간마다 상담실의 휴지를 다 뽑아 쓸 것처럼 온 얼굴로 눈물과 콧물을 다 짜내며 50분씩을 보냈다. 상담실에서 나는 아빠에 대한 미움과 엄마에 대한 원망, 비참함과 부끄러움과 분노 따위에 잡아먹혀 웅크리고 있던 열여섯 살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를 마음껏 연민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상담사님은 본격적인 상담 돌입 전 실시했던 2가지의 심리검사 결과지와 전문가다운 대화 스킬을 바탕으로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 주며 나를 자기 연민의 수렁에서 건져 주었다.


    3회기째에는 상담회기를 10회로 늘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아직 풀지 못한 응어리가 많았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기사를 보니 '도움군은 일대일 상담이 6회 추가 진행'된다는 내용이 안내돼 있었다. 내가 도움군이라니! 어딜 가서든 야무지다든지, 당차다든지, 아무튼 '도움'과는 거리가 먼 어휘들로 수식되는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도움군'이라는 명찰이 웃기고 신선했다. 그리고 내가 돌다리를 천 번쯤 두드린 다음에도 건너지 않는 극도의 위험회피 성향을 지녔다는 것,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삶을 몹시 사랑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사람은 의외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른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른다. 서른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나는, 세상에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믿음에 단단히 구속당해 '1인분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데다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공유할 줄도 모르는 열여섯 살이었다. 이제 그 어린아이를 조금 더 자라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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