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지내나요 난 별일 없는데
아빠가 남겨 준 집으로 이사를 온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어느 날인가의 상담 회기에서 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갑자기 확신이 들지 않는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던 것이 무색하게도 별 탈 없이 지내는 중이다.
상담은 종료됐다. 상담이 끝나던 날에 우리 가족을 날파리처럼 괴롭히던 송사도 마무리됐다. 거리가 멀어지면서 어느 순간 병원에도 발길을 끊었는데 별 탈은 없다. 대신 아빌리파이를 오랫동안 먹으면서 10㎏가량 불어났던 몸무게가 조금 줄었다. 엄마는 아직도 꽤 걱정하는 눈치이지만, 주중에는 하루살이처럼 살아내며 재미없는 일을 하고 주말마다 우리 집까지 찾아오는 남자친구와 함께 운동을 한 뒤 맛있는 술과 안주를 먹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기 때문에 외로울 틈은 없는 듯하다.
상담 개시 전에는 생명존중 서약서라는 것을 쓴다. 상담을 받는 동안 절대로 자살이나 자해를 하지 않을 것이며, 혹여라도 나쁜 생각이 들 시에는 주변 사람들이나 상담사에게 꼭 미리 이야기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마치 에러가 나서 '확인', '취소', '×' 버튼을 연타해도 절대 꺼지지 않는 윈도우 메시지 박스처럼 당시 내 머릿속에는 늘 죽음에 대한 생각이 깜박거렸기 때문에, 서명을 하면서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불현듯 기억이 났다. 지금은 "난 안 아프게 오랫동안 살 거거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용서하는 법, 받아들이는 법, 쳐내는 법을 배웠다. 악몽도 꾸지 않는다. 조금 힘들 때는 "보현씨는 자기 삶에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에요"라는 상담사님의 말을 되새긴다.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평범함은 내가 늘 바라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