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힘내'를 거꾸로 하면 '내 힘들다'
머리를 감고 나서 대충 물기를 털어 준 후 가르마를 탔다. 화장실 불빛을 받은 정수리 언저리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아버지 쪽 유전으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흰머리 문제로 고민해 오긴 했지만 유독 좀 심해 보였다. 흰머리는 날로 그 영역을 넓혀 세를 과시했다.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다가 무심코 건물 유리벽을 봤을 때, 흰머리가 기어코 정수리를 타고 넘어 이마 근처에서 제 존재감을 부르짖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한 달 반 만에 찾아간 미용실에서는 정수리뿐만 아니라 관자놀이, 뒷목까지 흰머리가 퍼져 있다는 비보를 접했다. 원장님은 "펌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라면서 혀를 찼다.
몇 년 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출입처에서 아주 민감한 사안에 대한 취재를 하루하루 이어 나가며 편집회의에서 내려오는 괴상망측한 지시를 묵묵히 쳐내던 때가 있었다. 취재하지도 않은 내용을 제목에 집어넣는 것도 모자라 MSG를 양동이째 들이붓는 편집부와는 "내 기사에 그딴 제목 붙이지 말라"며 지겹도록 싸웠다. 댓글란은 말할 것도 없고, 메일함이 욕설로 도배가 되기는 예사였다. 당시에도 흰머리가 부쩍 늘었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딱 세 배쯤 더 힘든 것 같다. 휴일만 보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는데도,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휴식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