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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19. 2023

여의도에는 욕망이 흘러들어 고인다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

    국회에 출입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연차가 낮고 나이가 어리고 부려먹기 좋다는 이유로 제법 큰 선거 당시에 정치부 정당팀에 잠깐 파견을 갔었다. 선거는 정치부에서 가장 큰 이벤트이기 때문에 손은 많을수록 좋고, 나는 주로 거대 양당의 출입기자들이 후보들을 따라붙을 때 선거 캠프에 붙박이로 앉아 '짜치는' 기자회견문을 처리하거나 짬짬이 현장에 보내지곤 했다. 그리고 곧 여의도라는 곳에 진력이 나고 말았다.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캠프에 들러붙어 이 기회에 한 자리 해먹을 수 있지 않을지 기대에 가득 차 눈알을 번들거리는 꼬락서니들이 너무 잘 보여서 신물이 올라왔다. 끈적한 욕망이 흘러들어 의사당대로에 고이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당시 내가 주로 만나던 취재원들은 주로 엘리트로 손꼽히는 부처·기관의 공무원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죄다 똑똑하다 못해 잘난 척을 해서 좀 재수가 없어 그렇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소명 의식에 가득 찬, 비교적 투명하고 담백한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경쟁 후보를 비방하기 위한 막말의 홍수, 맹목적인 팬덤의 앞뒤 없는 악플, 수신함을 가득 채우는 욕설 메일 따위에 금세 파묻히다 보니, 파견을 온 지 불과 나흘 만에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회색 건물들과 그 사이를 쏘다니는 딱딱한 복장의 공무원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나를 경악하게 한 사건(?)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모 정당의 모 대변인과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기자들은 마치 당의 내부인인 것처럼 선거 전략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자신이 출입하는 당을 '우리 당'으로 지칭하고, 그 당의 후보를 향한 온갖 찬사를 늘어놓았다. 양쪽 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다 알고 있으면서 핑퐁을 주고받는 것이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 시간 남짓 되는 점심시간 동안 묵묵히 밥만 퍼먹었다. 체할 것 같았다.


    이 일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나머지, 나는 파견 종료 후 팀 선배들과 오랜만에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열을 내 가며 인류애가 사라지게 된 경위를 줄줄 읊었다. 그러자 선배들은 정치부에서 출입처와 완전히 동화되어 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출입처를 배분할 때는 출신 지역과 정치 성향을 고려하고, 선거 기간이 되면 여야 출입기자들이 서로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이니 지금은 분위기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다면, 문제의 오찬 자리에서 거의 캠프 사람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던 기자는, 당시 내 생각처럼 입에 발린 말을 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사안에 따라 투표할 후보나 정당을 정할 뿐이지 온 마음을 다해 지지하는 정당이 없고, 대체로 거대 양당이 아닌 다른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했기 때문에 이방인이 된 기분으로 여의도에 뻘쭘하게 있다가 왔었고, 그 기간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말을 늘어놓던 내 표정이 점점 썩어 가는 것을 보던 선배가 모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 사람, 사람 좋지 않더냐?"라고 물었다. 좀 머뭇거리다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요……."라고 답하니, 선배는 "너는 정치부 기자 못 하겠구나"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후 여러 차례 부서를 옮길 기회가 있었으나 정치부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정치부에서도 딱히 나를 찾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나는 또 이방인의 위치에서 선거 캠프를 잠시 관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선거 승리를 예감하며 잔뜩 고무된 분위기 속에서 내 주변에만 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사람이 공작새처럼 화려하게 꼬리깃을 펼치며 자신을 과시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정치부 기자로 보이는 이들에게 필사적으로 말을 걸며 유력 정치인의 보좌관인지 비서관인지를 맡은 적이 있다고 자랑하던, 다소 나이가 있어 보이는 정치 꿈나무의 모습을 보니 수년 전 여의도 복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아, 내가 이래서 정치부에 안 갔지. 시쳇말로 '현타'가 왔다. 그 자리에 조금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당선 소감 인사가 끝나자마자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 박고 뛰쳐나와 택시를 잡았다. 새벽의 도로는 한산했고, 기사님이 틀어 둔 CBS라디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팝송이 흐르고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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