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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18. 2023

그 여름의 광화문

2017년 7월 30일

    사건팀에서 명함을 뿌리고 다니다 보면 별별 일을 다 겪기는 하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있었다.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으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 또 무서워서 우선 기록해 둔다.


    일요일에 나갈 기사가 없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지 부장이 또 희한한 지시를 내렸다. 같이 근무하던 후배와 머리를 바짝 굴려서 구역을 나눠 맡고 뙤약볕 아래로 나갔다. 이럴 거면 왜 기자를 했는지 모르겠지만(일 년에 300번쯤 생각하는 듯하다) 모르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말을 거는 게 죽을 만큼 싫었기 때문에 길에서 방황을 좀 하다가 코멘트 몇 개를 잽싸게 땄다. 대체로 출입처 사람 아니면 회사 이름을 잘 못 알아듣고 경계도 하기 때문에 명함도 건넸다.


    근데 아이들과 함께 나왔던 사람한테서 자꾸 연락이 왔다. 기사가 언제쯤 나갈까 궁금해서 저러나 싶어서 대충 받았는데, 두 번째 전화에서 나와 계속 연락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야기를 자꾸 질질 끌길래 촉이 더럽긴 했는데 저 말 듣자마자 소름이 쭉 끼쳐서 얼른 끊고 수신차단했다.


    회사 복귀하자마자 부장한테 미친놈을 만났다고 하소연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계속 문자가 왔다. 자기는 미혼이고 데리고 나온 애는 친구 애고 차나 한 잔 하자고 그러는데 아니 미친 유부남이 입 터는 건지 뭔지 내가 알 게 뭐람? 그냥 대충 죄송하다고 거절 문자를 보낼까 했는데 갑자기 확 열이 받았다. 내가 왜 죄송해야 돼? 하필 명함을 주는 바람에 어느 회사 다니는 지도 알고 내 번호를 아는 것도 엄청나게 찜찜하긴 하지만 그냥 아무 대꾸도 안 하기로 하고 스팸차단했다. 부장이 계속 연락이 오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라고 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혹여라도 와이프가 머리채 잡으러 회사까지 쫓아올까 봐 너무 무섭고, 유부남이 아니더라도 계속 연락해올까 봐 또 무섭다. 그리고 내가 무서워해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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