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프랑켄슈타인〉(2025)의 스포일러 있음
김치찌개 장인 기예르모 델 토로가 이번에도 기가 막힌 김치찌개를 끓여 오셨다. 무려 제작비 1600억 원을 들여서. 2시간 30분이나 되는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아름다운 영화였고, TV나 태블릿, 휴대폰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니라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는 데 백 번 동의하는데, 한편으로는 집에서 봤기 때문에 다행스러운 점도 있었다. 영화 보는 내내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낳았으면 책임을 지라고!"라고 비명을 질러야만 했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적인 경험이었다.
갈라테이아는 아프로디테가 숨을 불어넣자마자 피그말리온의 이상형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여자로 기능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년해로가 가능했을 테지만, 사실 엄청나게 편의주의적인(실은 징그러운) 이야기이고, 인간 종이든 비인간 종이든 막 세상에 던져진 미성숙 개체를 돌보고 길러 낸다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아기는 혼자서 팔다리도 못 다루고, 그 이전에 먹고 자고 싸는 법도 모른다. 효율적인 의사 전달 방식도 수년에 걸쳐 배워 나가야만 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보호자에게 가장 거슬리는 주파수의 울음소리를 이용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하고 재생산을 하기로 결심한 뒤로 늘 그 생각을 했다. 내가 과연 하나의 미성숙 개체를 자조 가능한 인간으로 길러낼 수 있을까. 그 과정에 수반되는 모든 극한 육체적·감정적 노동을 성인으로서 능히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남자 주제에 감히 생명을 창조한다는 일의 무거움과 끔찍함에 대해서 단 한 톨도 생각하지 않고 어찌어찌 미성숙 개체를 빚어 놓기는 했으되, 누덕누덕 기워져 있어서 보기가 좀 끔찍한 미남일 뿐 사실 깨끗한 백지상태의 영아나 마찬가지인 피조물이 곧장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의 지적 성취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윽박지르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너무 힘이 들었다. 그 피조물은 눈먼 노인에게 글을 배우고 온갖 책을 빨아들이듯이 읽고 자연 현상을 멀리서 관찰한 뒤로 개념어를 구사하고 세상의 이치를 얼추 깨달을 정도로 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렇게 체감상 거의 10분에 한 번씩 "너무 불쌍해!"라고 외치다가 얼떨결에 영화를 두 줄로 압축하는 대화를 했다.
"쟤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사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지."
실로 그러하다.
키 2미터에 사슴 같은 눈망울을 지닌,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창조주에게 시구 같은 말들로 분노를 토할 줄 아는 건장한 돌쟁이 피조물도, 나 같은 것보다 훨씬 성숙한 결정을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들이 끔찍하더라도 그저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내게 지금까지 주어져 온 과제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계 경제 빈곤과 부모의 극렬한 불화와 그에 따른 정서불안과 교우관계의 어려움과 또래 사회 적응 실패, 그로 인해 소아·청소년기부터 성인기까지 이어 온 해묵은 우울증을 부여잡고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끝없이 징징거리기에는 아무래도 나이를 좀 많이 먹었다. 게다가 내가 의도적으로 번식 행위를 해서 수정시키고 분열시키기 전까지는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미성숙 개체를 맞아들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마음가짐도 아니다.
일전에 심리 상담을 받은 뒤로 장복하던 약을 다 끊기는 했는데, 내년에 산전검사 일정 잡으면서 심리 상담 다시 시작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유년기의 결핍에 잡아먹힌 나머지 고통받는 인간을 둘로 늘려 놓은, 델 토로의 빅터 프랑켄슈타인보다는 좀 나은 인간이어야 하지 않겠는가.